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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그 다섯번째 이야기 (5th. story in Annapurna)

Thorung Phedi(4441m)-Throung Pass(5416m)-Mutinath(3760m)

토롱페디에서 본 강가푸르나의 일출

여기 숙소가 좋은 점은 거의 24시간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아니 4500m 숙소에 전기가 들어오다니, 식당에 가 보니 그것도 전기잡아 먹는 귀신이라고 불리는 전기 히터를 몇 개나 켜 놓았다. 어떻게 전기를 끌어들이냐고 물으니 밑의 계곡에서 수력발전을 돌린다고 한다. 20kw급이라고 한다. 20kw면 60촉 짜리 백열전구를 300개나 동시에 킬 수 있는 양이다. 오랜만에 따뜻한 식당에서 문명의 혜택을 실컫 누려본다.

아! 밤이 오는 것이 두렵다.
또 새벽녘에 긁적긁적 대느라 잠을 설쳤다. 이른 새벽 빈대 때문에 잠이 깨어보니 창밖이 제법 밝다. 커튼을 제처 보니 멀리 강가푸르나가 한 눈에 들어온다. 태양이 뜨면서 한 쪽 설벽을 붉게 물드는 것을 천천히 지켜 본다.

트래킹 도중 오늘 날씨가 제일 좋다.
그리고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이다.

최고점인 토롱패스(5416m)를 넘어야 한다. 여기서 부터 1000m를 올라가고 또 하루안에 묵티나트까지 2000m가까이 내려와야 하는 힘든 일정이다. 중간에 밥먹을 곳도 없다. 비스켓 하나 챙겨 출발을 서두른다.

 

토롱페디는 흔히 이곳 안나푸르나 라운딩(Circuit)트래킹의 베이스 캠프로 불린다. 여기서부터 300m정도 위에 하이캠프가 하나 더 있지만 너무 높이 있어 잠을 자기는 부담스럽다.

주인을 깨워 아침을 간단히 먹고 서둘러 출발을 한다. 보기에 가까울 것 같아 직선으로 올라가는데 잘 못 생각한 것 같다. 초반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힘들다. 이런 경우 지그재그로 올라가야 하는데 욕심을 부린 것이 실수이다.

그래도 풍경이 확실히 달라진다.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처음으로 내가 여기 오길 참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진>쏘롱페디에서 하이캠프 가는길.
트레일 중 가장 심한 경사를 보여준다. 직선거리로 한 500m정도 될까? 한 시간이 더 넘게 걸리고 만다.


5000m를 넘어 서면서 사막보다 더 사막 같은 분위기를 보여 준다. 동화속 이상한 나라에 온 기분이 든다.

숨이 가쁘다. 그래도 다행히 두통은 멈춰졌다. 3500m 시작된 고산증이 신기하게도 5000m를 넘어서자 멈춰진 것이다. 하이캠프까지 가는 길에 무리를 했더니 이젠 할머니처럼 두손으로 지팡이를 집은 다음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게 된다. 전에 숙소에서 지팡이가 보이길래 살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냥 가져가라 해서 챙긴 것이다. 스틱은 두개를 같이 사용할 때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몸무게의 30%까지 하중을 줄여준다.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관절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무릎이 안 좋은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5000m가까이에 있는 마지막 숙소 하이캠프,
내가 아침에 들렸을 때는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비수기에 여기 묵을 계획이라면
미리 확인을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토롱패스 가는 길의 찻집
성수기에는 여기 들려 차 한 잔 하면 좋겠지만 지금 비수기라 철지난 해변 처럼 텅 비어 있다.


최고점인 토롱패스(5416m)
트래킹시즌 때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이 후에 오는 트래커들한테 박수갈채를 보내는 곳이라고 하는데 바쵸르가 거칠게 바람에 휘날리고 있을 뿐 아무도 없다. 잠시 담에 기대어 쉬어 보지만 바람이 너무 거칠다.

이제 내리막 길이다. 길은 마치 사막을 가로지르듯 좁고 길게 뻗어져 있다. 티벳이다. 티벳에서는 이런 길을 버스로 타고 넘었지만 여기는 걸어가야 한다. 보일듯 말 듯 한 길에는 긴 장대 하나씩 꼽혀 있어 여기가 트레일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오늘은 아무도 보지 못햇다. 트래커들 뿐만 아니라 현지인도 안 보인다. 하긴 누가 여길 쉽게 넘겠는가? 사막과도 같은 황량한 길을 지팡이를 의지삼아 혼자 터벅터벅 댄다. 아침에는 제법 푸른 하늘을 보여 주었건만 이제 구름이 밑에서 부터 치고 올라와 뿌연 안개가 잔뜩 낀다. 간혹 싸리눈이 조금씩 흩날리지만 걱정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다행히 아침 일찍 출발하여 아직 일정에 여유가 있다. 바닥에 누워 구름이 산 허리를 감싸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혼자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한다. 이 길은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난다. 사람이 살지 않는 길.

한 숨 자고 가고 싶은데 그러질 못한다. 혹시 자고 일어났더니 해가 어둑어둑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면 낭패이다. 검은 새 한 마리가 낮게 창공을 가로지르더니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창공을 나는 새도 그림자가 있었구나? 미처 몰랐다.
그러고 보니 산도 구름도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태양이 너무 강해 썬그라스를 꼈음에도 햇살이 비추면 눈살을 찡그린다. 아지랭이가 펴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것이 꼭 꿈속 같다. 길은 비탈진 경사면을 구불구불 나 있어 자칫 헛집기라도 하면 저 멀리 낭떠러지로 한 참 떨어질 것이다.



아마 오늘 걸은 이 길은 평생 잊지 못 할 것 같다.


별 짓을 다한다. 배낭을 베고 누워 왼손을 길게 뻗어 셔터를 누르고, 다시 확인하고, 또 찍고
한 숨 자고 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갈 길이 걱정이 된다.


저 멀리 푸른색이 보이는 것이 오늘의 종착점인 묵티나트이다.

마을에 다가오면서 이제서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은 토롱패스를 넘는 근 7시간 동안 사람 구경을 못 했다. 외로웠던가? 아니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꿈 속을 걸은 것 같다.

그러다가 저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1시간 이면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보인다. 마을이 움직이는 걸까? 착시일까? 아님 내가 지쳤을 뿐인가? 3시간 이나 걸려 드디어 마을에 도착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 드디어 누군가 '나마스테' 하고 말을 붙인다. 그리고 하는 말이 '아임 헝그리' 하고 덧 붙인다. 나도 대답한다. '나도 배 고파요' 하니 모녀가 까르르 웃는다. 마침 사탕 몇 개 남은 게 있어 건네 주니 또 활짝 웃는다.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세탁서비스를 부탁했다. 아직 3600m대라 쌀쌀하지만 여름 옷으로 갈아입고 입고 있던 겨울 옷 모두를 맡겼다. 사정을 얘기하고 반드시 끓는 물에 5분 이상 담근 다음 빨아달라는 특별 주문도 함께 했다. 감기가 걸릴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밤새 빈대에 시달리는 것 보단 날 것이다.

여기 호텔에는 별 난 사람이 꽤 있다. 25년간 여행중이라는 독일인 친구는 자기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나한테 부탁한다. 25년 이라! 고향이 그립지 않냐고 물으니 3년 전에는 어머니가 인도로 와서 한 달간 같이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 뿐인가? 그것이 다라고 한다.

외로웠던 것일까? 아님 친구가 필요했던 것 일까?
날 잡고 한 참을 얘기한다.

또 한 뉴지랜드 친구는 옆에서 계속 하시시를 피워대고 있다. 입으로는 연신 하시시-담배에 마리화나를 정제한 고체를 조금 넣어 피는 항정신성(^*^)약품의 일종-에 대한 칭찬이 계속된다.마치 그것이 자유와 해방의 전부라도 되는 듯 얘기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물론 아닐 것이다.
<사진> 독일인 친구 요기


해질녘 옥상에 올라가 본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군데군데 비추는 것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여기 모든 집들이 다 그러하듯 옥상에는 룽다 몇 개가 바람에 거칠게 휘날리고 있다.


설산만 아니라면 사막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저 길을 혼자 걸을 수 있었다는 것.
이젠 안나푸르나에 미련이 없다. 세상 끝을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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