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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도 카트만두(Historical City Kathmandu)


언덕 위에서 굽어본 카트만두 전경
현재 모습의 기초가 다져진 것은 12세기 경이지만 카트만두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팔은 우리에게 있어 히말라야로 알려져 있지만 꽤나 오래된 고대 왕국중의 하나이다. 티벳과 인도 사이에 위치해 있어 양쪽 문화를 모두 흡수해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가졌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리 밝지 많은 않다.

듣기로 네팔에는 크게 세 개의 세력이 있다고 한다. 봉건적인 왕실과 승려 그리고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야당파 마지막으로 모택통 공산주의를 그 모델로 하는 반정부군인 마오이스트들이다. (중국은 이 마오이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기를 권유했지만 그들에게 있어 마오쩌뚱은 하나의 영웅인 듯 싶다) 이들은 서로 균형을 찾기 보다는 계속 유혈항쟁을 반복하고 있다. 국민들 또한 한 쪽을 지지하기 보다는 서로 나눠져 있으며 2001년 왕실의 가족이 모두 피살되는 사건 이후로 정치적 상황은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또한 미국은 9.11테러 이후로 네팔이 불안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테러리스트 들의 온상이라고 판단, 정부군을 지원하게 되는데 이 때 들여온 자동화기는 오히려 민간인의 피해만 가중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요즘에는 거의 한 달에도 몇 번씩 정부군과 반정부군 간의 전투가 일어나며 매번 수십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있다.

네팔은 또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빈민국이고 대부분의 재정을 관광객들에게 의지하고 있으나 불안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관광객은 계속 줄고 있는 형편이다. 내가 네팔에 들어갔을 때도 마오이스트들에 의해 번다라고 하는 정치적 파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들은 저항의 표시로 파업을 선포하고 이때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고 심지어 버스까지도 운행을 중단하게 된다.

<사진 카트만두에서 유명한 여행자 거리인 타멜 스트리트

타멜스트리트는 방콕의 카오산로드처럼 여행자들을 위한 모든 편의시설들이 갖춰진 거리이다. 이곳 또한 번다기간에는 1층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고 무장 군인들도 보이는 것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일단 이곳에 오면 저렴한 숙소부터 여행사등 모든 편의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타멜거리가 지겨워 조금만 걸어나가 보면 또 골목에, 거리에 삶의 터전을 두고 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벌써 몬순이 시작된 것인가?

벌써 몇 일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열대성 스콜과는 달리 하루종일 비가 오는 날도 있다. 카트만두에서는 예정과는 달리 열흘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인도비자문제도 그렇고 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 오니 왠지 움직이기가 싫어진다. 티벳에서 지친 몸을 추슬리고 빨리 안나푸르나로 트래킹을 떠나야 하는데 자꾸 게을러진다. 물가도 중국보다 저렴하다. 여기 카트만두 또한 장기 여행자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인도에서 더위를 피하러 온 사람들이거나 인도로 내려가기전 여기에 들린 티벳에서 온 여행자다.

그냥 거리를 어슬렁 거리다 보면 한국인 혹은 다른 아는 여행자를 쉽게 만나게 된다. 그러다 저녘이라도 함께 하게 되면 맥주를 곁들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하루는 무심히 가게 마련이다. 또 이곳은 불편한 것이 거의 없다. 아예 숙소를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로 옮기고 한국보다 싸다는 핑계로 거의 매일 한국음식을 먹는다. 어차피 트래킹을 떠나게 되면 매일 여기의 주식인 달밧(인도의 탈리)만 먹게될 것이다.

또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거의 모든 네팔리들이 외국인을 대할때 말끝마다 Sir(선생님?)를 붙인다. 나 같은 몰골의 배낭여행자한테 이런 극존칭을 쓰다니 싫지 만은 않다.

'어딜 가시나요? 선생님!'
-음..어디 가는지 나도 모른다. 그냥 걷고 있다-

'뭘 원하시나요? 선생님!'
-음..어려운 질문이군.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난 당신의 친구입니다. 선생님!'
-음...미처 몰랐군, 친구!-

'노 프라블럼입니다. 선생님!'
(이 말은 프라블럼이 있긴 있는데 자기가 해결해 보도록 노력해 보겠다 라는 정도로 알아듣는 것이 좋다.)

여하튼 최소한 지루한 곳은 아니다.

네팔에서 인도비자 받기
인도대사관은 카트만두의 타멜거리에서 도보로 약 20분 거리에 인도 대사관이 있다.
여기서 Transit(15days, 경유)과 관광비자 등을 모두 담당한다. 아쉬운 점은 일주일이 소요되며 결국 세 번을 찾아가야 한다. 첫번째는 비자를 신청하고(여권을 맡기지 않아도 된다.) 그 후 일주일 후 오전에 찾아가 비자피와 여권을 맡기면 그 날 오후 비자가 찍힌 여권을 받아 볼 수 있다. 들리는 말로는 한국인은 보통 2개월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3개월 비자를 받았다.

뭐 뾰족한 수가 있냐고?
심사관이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하길래,
그래요? 뭘 좋아하냐고 묻고,
김치라고 하길래 나도 벙긋 웃으면서 나도 좋아한다고 했을 뿐이다. ^*^

비자피는 3350NPR(55000원)이며 발급일로부터 3개월간 유효하며 두번 입국할 수 있는 더블비자 이다. 아래 하단을 보면 관광비자는 현지에서 연장이 안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듣기로는 일본인은 비자피가 훨씬 싸다는 배아픈 소식이 있다.
너무 열받지 말자! 미국인은 좀 더 비싸다.^*^

기타 남아시아(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는 비자피가 1/10로 줄어들고 다른 모든 나라는 비자피가 동일하다.(네팔리는 무료?)
2004년 정보


두바르 거리(Dubar Street)
두바르는 네팔리로 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현재의 왕궁으로 옮기기 전에 국왕이 거주와 집무를 보던 곳이고 그 광장 주변에는 많은 사찰과 순례객 그리고 네팔의 상징 중의 하나인 쿠마리가 살고 있는 집인 쿠마리 바할이 있는 곳이다.

쿠마리란 살아있는 여신이다. 4살 이후의 여아를 여러 조건에 의해 간택을 한 후 이 곳 쿠마리 바할에서 순례객들의 참배를 받으며 영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다 첫번째 생리를 하게 되면 그 순수성을 잃었다고 하여 내 쫒기게 되는데 이 때부터 그녀는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글쎄 남의 문화를 가지고 폄하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니지만 나는 이 얘기를 들을때 마다 우습게도 자꾸 피임약이 생각난다. 그거 한 박스만 있으면 그녀는 평생동안 꽃무덤 속에서 돌계집으로 살아갈 수 있을텐데...)

<사진 좌> 두바르 광장의 풍경
한 켠에는 네팔과 티벳에서 만든 여러 물건들을 팔고 있지만 상인들에 비해 관광객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 우> 광장을 산책하는 사람들과 순례객들

한 번은 이 근처 프레이크 거리라는 곳을 물어 찾아가 본다. 이 곳은 한 때 서양에서 온 히피들로 넘쳐난 거리이다. 역시 지금은 철지난 해변처럼 오래된 간판이 그 흔적과 세월만을 말해주고 있을 뿐 여행자도 히피들도 안 보인다. 인도의 고아도 이미 히피들이 다 떠나버렸다고 하는데...
어딜가야 그들을 볼 수 있지?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그냥 두런두런 얘기를 나눠 보면서 어떻게 사는지 구경하고 싶다.

몸키 템플(Swayambhunath)
스와얌부나트는 외국인에게 몽키템플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언덕 위에는 사찰과 티벳식 곰파(탑)가 죽 늘어서 있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원숭이 들이다. 다행이 이곳의 원숭이들은 인도보다 덜 극성스럽다.

네팔에는 인도에서 들어온 힌두교와 티벳탄 불교들이 섞여 있어 때론 어느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

이곳에는 기와양식을 딴 중국식 절, 그리고 중앙에 큰 구형이 있는 티벳식 곰파와 마니차(Player Wheel) 원추형의 힌두식 탑이 모두 함께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네팔의 가장 큰 심볼인 거대한 탑에 커다란 눈이 그려져 있다.

 

 

 

<사진> 네팔의 상징

이 눈은 여러 관광상품의 로고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무생물인 건물에 눈을 그려 넣어 의인화를 한 셈인데...

혹 장인의 아이디어가 아니였을까?

네팔의 유적지 입장료도 불과 2-3년 전 부터 계속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 인도처럼 몇 만원 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입장료라는 것이 그리 투명하지 않다. 일단 내국인에 한해서는 입장료가 없다. 또한 입구에는 정중하게 문화재 보전을 위해 기증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매표소에서는 떡하니 입장료를 받는다.

나야 기본적으로 입장료는 내고 다니자는 원칙이지만 사정이 이러하니 조금 망설여 지는 것도 사실이다. 1-2천원이야 그냥 내고 다니지만 그 이상 되면 망설여 진다. 학생할인도 안되고 잘 깍여지지도 않는다.(입장료를 깍을 생각을 다 하다니 이젠 나도 닳고 닳았군!) 낼때도 있고 한 번은 빙돌아 뒷문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확실히 입장료를 안 내면 좀 움츠러 드는게 사실이다.

화장터(Pahupatinath)
파슈파티나트(하 읽기 어렵다.)절은 네팔에서 가장 유명한 힌두사원으로 창조와 파괴의 신인 쉬바를 모시고 있다. 하지만 여행자들 한테는 이 사원 앞에 있는 화장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라나시 갠지스강의 버닝가트처럼 이곳도 작은 강가에 하루종일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자욱하다.

주변에는 유족들이 담담하게 지켜 볼 뿐이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또 죽음을 보러 오다니...

뭘 찾으러 자꾸 이렇게 오는지..아마 바라나시에 가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정리를 해야 할 듯 싶다.

<사진> 힌두신인 쉬바는 소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인가? 사원내에는 동으로 만든 커다란 소가
그리고 입구에는 거대한 황소가 지키고 있다.


유족들이 곡소리 하나 없이 무심히 지켜보듯 여행자 또한 강 건너에 앉아 천천히 지켜본다.


화장도 화장 이지만 그 뒤 작은 방에 웅크리고 있는 노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누구일까?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니 Cornea: 안구, Excision: 절제 라고 나와 있는데...
안구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닐 것 같은데....


화장터 주위의 아이들은 또 무심하게 바닥에 공기돌을 가지고 놀고 있다.
어른들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 산사람은 살아야지

결국 나도 강건너 불구경을 하고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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