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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의 고향 룸비니-Lumbini, Birth place of Budda


마야데비 사원
약 2500년 전 마야데비는 여기서 목욕을 하고 얼마 후에 싯다르타를 출산하게 된다.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삼일을 더 머무르게 되었다. 인도에서 받기 귀찮아진다는 파키스탄 비자를 받기 위해서이다. 트래킹을 떠나기 전 짐을 맡긴 속소로 돌아와 트래킹을 떠날 때 문제가 되었던 버스표를 말한다. 처음에는 이미 지나간 버스표이니 환불을 해줄 수 없다고 해 다시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혹 늦게 도착해서, 아니면 티켓 창구를 잘못 찾아 그렇게 되지 않았냐고 묻는다. 나는 비교적 합리적인 사람이다. 이번에는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던 새로 산 버스표를 보여준다. 그리고 명확히 못을 박는다.

'난 여기서 버스표를 샀고 그 버스표는 사용할 수 없었으며 그래서 난 지금 환불을 원한다고..'

새로 산 버스표에는 출발 시간도 있으니 이젠 딴 소리도 못하게 된 셈이다. 숙소매니저는 그럼 자기가 직접 여행사에서 가서 알아보겠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그만두었으니 망정이지 나보고 여행사에 가 직접 알아보라고 했으면 나도 가만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매니저가 직접 여행사에 가 내가 지불한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아 준다. 생각보단 일이 쉽게 풀린 셈이다. 아마도 이 금액에는 여행사를 왔다갔다 하는 명목으로 받은 얼마의 수수료도 있었을테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더이상 군소리를 안하고 고스란히 돌려준다. 내심 억지를 부리면 한바탕 싸울 준비까지 하고 있던 내가 머슥해진다. 떠나기 전 근처 빵집에 가 빵을 한 봉지 사와 나누어준다. 트래킹 전후로 여기 열흘 이상 묵었으니 나도 정이 들었다면 든 셈이다.

오전에는 파키스탄 대사관을 찾아간다. 인도와 파키스탄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는 비자를 받는데 골치아픈 일이 많이 생겨 다들 가능하면 네팔에서 받으라고 한다. 파키스탄 대사관의 비자업무는 조금 색다르다. 정문에서 신원파악과 짐을 맡기고 대사관저의 세련된 공간으로 가 푹신한 쇼파에 앉아 기다린다. 비자를 신청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하루에 다섯명이나 될까? 일본 여행자 커플과 네팔리 한 명 그리고 중국인 두 명과 내가 널찍한 소파에 앉아 멀뚱하게 기다리고 있다. 다들 얼마나 기다려야 되냐고 묻고 싶은 눈치이지만 나서는 사람은 없다. 그냥 이것이 여기 시스템인가 짐작만 할 뿐이다.

일본커플 여행자가 재미있다. 보름동안 상해로 배타고 들어와 중국내륙과 티벳을 거쳐 여기에 왔다고 한다. 한 달반 안에 인도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다시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배타고 일본으로 들어가는 일정이다. 이 일정은 아마 교통편이 다 갖춰져 있는 패키지 여행자도 소화하기 힘든 일정 일 것 같다. 오는 동안 반을 버스나 기차 그리고 배에서 보냈다고 한다. 오늘은 방글라데시 대사관 그리고 여기 파키스탄 대사관과 오후엔 일본 대사관을 들려야 한다고 한다.
내가 농담삼아 오늘은 대사관 투어네요. 했더니 웃으며 그렇다고 한다.
아마 움직이는 것이 이 들의 테마인가 보다. 그것도 여행의 한 방법인 것 같다. 어느 여행자는 한 곳에 몇 달간 묵기도 한다. 지루하지 않냐고 물으면 어차피 여기 들리는 여행자들이 매일 바뀌기 때문에 결국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한다. 누군가가 떠나면 다시 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우는 셈이다.

이 모두 여행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네팔에서 파키스탄 비자 받기

네팔의 카트만두의 파키스탄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이틀이 소요되며 비자피는 36불이고(네팔루피로 지불가능) 90일 단수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비자 업무시간: 10:30-12:30

단 주의하여야 할 것은 비자 발급일로부터 45일 안에 입국을 해야 유효하다는 것이다.(Good for journey upto) 즉, 네팔에서 인도를 거쳐 파키스탄을 갈 경우 인도를 여행할 수 있는 기간이 1달반 미만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그 이상 인도를 여행하고 싶은 사람은 인도의 델리에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배아픈 것은 일본인들은 비자피가 무료라는 것이다. 도대체 뭔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우리와 비교되기도 하니 배가 아픈 것은 사실이다.

90일 체류기간은 발급일이 아니라 입국일로 부터 계산된다.
<사진>파키스탄 비자 2004년 정보


룸비니 가는 길

이제 카트만두를 떠날 시간이다. 여기 카트만두는 물가도 저렴하고 또 불편한 것이 없으니 생각보다 오래 머무른 셈이다. 이제 인도로 들어갈 시간이다. 인도로 들러가기 전 국경 근처에 있는 룸비니를 들려볼 생각이다.

룸비니는 부처님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약 2500년전 싯다르타의 어머니 마야데비는 출산을 앞두고 친정에 가다가 사리수가 활짝 핀 이곳 룸비니를 지나치게 된다. 그 때 이 곳 작은 연못에 목욕을 하고 나서 갑자기 진통이 와 이곳 룸비니에 싯다르타를 출산하게 된다.
싯다르타가 29세 되던 해 그는 성 앞에서 노인과 병자 그리고 시체를 보고 생각한 바가 있어 그의 화려한 왕족생활을 접고 출가를 하게 된다. 그는 처음 힌두의 사두처럼 우주의 진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나 화두를 인간으로 바꿔 보드가야의 보리수밑에서 49일간 묵상 끝에 진리를 얻게된다. 그 후로 근처 사르나트에서는 처음으로 설법을 하게 되는데 이때 주요 핵심은 잘 알려진 4성제이다. 즉, 인생은 원래 고통이며 이는 욕망에서 비롯되고 이를 없애면 절대적인 평화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그 주 논지이다. 그는 이 이후로 80세까지 설법을 계속 피다가 쿠시나가르에서 사망-싯다르타라는 이름은 부다(부처님)와는 달리 인간적인 측면을 조명할 때 주로 사용한다-하게 된다. 여기서 불교 4대성지인 룸비니, 보드가야, 사르나트, 쿠시나가르가 생기게 된다. 그의 마지막 순례지인 쿠시나가르는 룸비니와 불과 몇 백 킬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음을 예감하고 그는 고향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 아니냐라는 얘기도 있다.

가능하면 오늘 안에 룸비니에 도착할 생각으로 아침일찍 서두른다. 저번 버스표의 오버부킹때문에 이제는 여행사를 통한 예약없이 아침 일찍 터미널로 직접간다. 서둘러 표를 끊고 버스까지 탔지만 그나마 빠르다고 알려진 미니버스는 동네방네 다 정차하면서 사람들을 태우며 세월이다. 거기다 중간에 펑크도 한 번 난다. 그래도 중국에서는 펑크가 나면 타이어를 통째로 갈아 끼웠는데 여기는 아예 펑크를 때운다. 바퀴를 빼서 튜브를 꺼내고 바람이 새는 곳을 찾아 땜빵을 하고 접착제가 굳을 때까지 고정을 시켜 놓는다. 승객들은 빙 둘러 무심히 지켜볼 뿐이다. 나만 조급한 것인가? 예정대로라면 오늘 저녘 룸비니에 도착할 수 있는데 늦어진다면 또 엉뚱한 데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하루가 아까운 것이 아니고 하루 자고 이동하고 또 하루자고 뭐 그런 일정이 싫은 것이다. 일단 그 무거운 배낭을 풀었으면 몇 일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버스는 7시가 다 되서 룸비니로 가는 버스가 있는 바이와라에 도착한다. 나 때문인가? 버스는 웬 이상한 호텔앞에 멈춰선다. 그리고 룸비니로 가는 버스는 이미 끊겼다고 말한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방을 보고 나오는데 형편없는 방이 꽤나 비싸다. 그리고 주인은 왜 그리 퉁명스러운지, 어차피 뜨네기 손님이니 잘려면 자고 말려면 말아라 하고 배짱을 부린다. 웬만하면 몸도 지쳤으니 하루 잘려고 했는데 정이 뚝 떨어진다. 배낭을 메고 다시 나간다.

여기부터 인도 분위기가 나나? 똑 같은 질문을 계속 여러사람한테 여러번 해야 한다. 질문은 간단하다. 룸비니 가는 버스가 몇 시까지 있냐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어떤 이권에도 개입되는 않은 사람한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숙소주인은 없다고 말해야 자기집에 머물므로 없다고 하고 택시운전사는 또 버스가 끊겼다고 해야 택시를 타니 또 없다고 하고 여기까지 나를 태우고 온 버스 운전사는 숙소 주인과 친구인지 아님 중개료라도 챙기는지 또 없다고 한다. 결국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으니 7시 반에 막차가 있으며 여기서 릭샤를 타고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결국 이사람 말이 진실이다. 어차피 이 동네에 정이 뚝 떨어졌으니 또 서두르기 시작한다. 룸비니로 가는 버스를 타자 이번엔 버스가 가관이다. 이미 폐차장에 갔어나 한 참을 지났을 법한 버스다. 철판은 군데군데 뜯겨져 나갔고 지붕에서 비도 샌다. 여기서 우산을 피면 정말 우수워 지겠군 하고 생각하고 빗물이 안 새는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22km거리인데 두 시간 가까이 걸리면 도대체 시속 몇 킬로인가?

버스는 9시경 룸비니에 도착한다. 내리자 마자 한국절을 어떻게 찾아가냐고 묻자 이미 문을 닫았다고 한다.
슬슬 나도 스팀이 오르기 시작해 나도 다짜고짜 묻는다. "Who are you?"
그랬더니 자기 친구가 호텔을 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렇지.
이번엔 릭샤를 찾아 얼마냐고 묻자 250루피를 부른다. 250루피면 카트만두에서 여기까지 오는 버스비이다. 산 너머 산이군! 배낭을 꿰차고 방향을 잡아 걸어 나간다.

룸비니유적지 안으로 들어가자 불빛 하나 없는 칠흑같은 어둠이다. 다행이 비는 그쳤지만 바닥은 군데군데 물웅덩이와 진흙탕이다. 작은 손전등으로 웅덩이에 빠지지 않을려고 바닥을 비추랴 표지판을 찾으랴 바쁘다. 다행히 표지판이 보인다. 이젠 숲길이다. 칠흙같은 어둠. 나도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이런 길을 이시간에 혼자 다니다니 하고 중얼거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숲길로 들어서니 수십 수백마리의 반디불이가 보인다. 한 나무에는 수백마리가 붙어 있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같다. 한적한 외길. 풍경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지만 아쉽게도 즐길 여유가 없다. 발걸음을 빨리 한다. 그리고 결국 찾았다. 문이 잠겨있어 불러 본다.

'계세요!', '나마스테!', '헬로우!'
TV소리도 나오는데 사람은 안나온다. 담을 탈까하다가-정말 나도 단맛쓴맛 다 본 여행자가 되었나 보다-문을 계속 두드리니 결국 누군가가 나와 문을 열어준다. 안으로 들어서니 한국 스님 한 분이 누군가와 널상에 앉아 한가롭게 마실 중이다.

결국 찾긴 제대로 찾은 것이다.

룸비니는 베둘레헴이나 메카처럼 순례자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이 곳 룸비니는 한적한 분위기 덕분에 그 매력을 찾았다고나 할까? 가끔 들리는 순례객들 때문에 표지판이 세워지고 작은 상점들이 생겼지만 아직 주변은 넓은 숲과 들 그리고 새소리로 인해 시간을 거슬러 저 멀리를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다.
또한 룸비니는 세계 여러나라의 절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처와 관련있는 인도 몇 군데의 성지도 이러하지만 아마 규모로 얘기한다면 여기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대성석가사라는 이름의 사찰이 공사중이다. 아마 완공이 되면 근처 어느나라의 절보다 가장 클 것 같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내가 있는 동안에도 오스트레일리안 커플과 일본 커플 그리고 티베탄 한 명이 묵고 갈 정도로 인심도 좋은 편이다.

건설중인 대성석가사의 망루에서 본 중국절인 '중화사'

룸비니유적지는 이처럼 넓은 대지위에 각국에서 자비로 세운 절들이 넓게넓게 위치해 있어 불신자로서는 명상과 정진을 여행자들에게는 평안한 휴식을 제공해 준다.

 

<사진>중화사 전경

아침공양을 하고 카메라 하나 메고 산책을 나간다. 분위기 좋은 숲길과 들판을 가로지른다. 어제밤 내가 걸은 길이다. 이렇게 평화로운 길에서 그렇게 혼자 무서워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룸비니 유적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입부에 가까운 곳에는 마야데비템플과 작은 박물관이 있는 유적지타운과 중앙의 국제적인 절들이 모여있는 템플지역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문화센터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아소카왕이 세운 사원군의 잔해


룸비니의 사람들


<사진>순례객들을 위한 쇼핑센터
오히려 소박함이 룸비니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이다.

유적지에는 진륜성왕이라고 불리는 아소카왕이 기원전 세운 유적지가 주춧돌만 남아 있고 각국의 절들은 철근콘크리트조로 새로 지어 사실 그렇게 흥미를 끌 만한 것이 있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은 가벼원 진다. 그냥 아침 저녘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숲길을 천천히 걸으면 된다. 식사시간이 되면 사찰내의 종이 울리고 그러면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식당으로 행한다. 공양시간을 놓치면 마을까지 한 참을 걸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 시간은 꽤 중요하다. 부처님아래 모든 인간이 똑 같으니 사찰내에서 일하는 네팔 인부들, 여행자들, 스님들 모두 한 곳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

그래도 여긴 사찰내이라 한 가지 불편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담배였다. 밥에는 화장실에서 몰래 피기도 하지만(쩝!) 낮에는 담배 끼니마다 문을 나서야 한다. 한국절 맞은 편엔 중국절이 있는데 그 사이에 한 릭샤왈라가 하루종일 앉아있다. 때론 손님을 기다리는 것인지 그냥 혼자 노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리고 영어가 꽤나 서투르다. 마치 영어는 디스로 시작해서 디스로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듯 하다.

'디스 차이나 디스?'
-아니 나 한국에서 왔어!-

'디스 코리아 디스!'
-응!-

나도 묻는다.
'디스 릭샤왈라 디스?'
하니 오랜만에 디스를 사용하지 않고 '예스'라고 대답한다. 내가 릭샤를 탈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는 다시 릭샤에 올라타 눕는다. 그것이 마치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일인듯 릭샤왈라는 태평이다.

나는 또 보자 라는 말을 남기고 이만 들어간다.

해는 뉘엿뉘엿 구름사이로 석양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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