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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가는 길. 티벳에서 카투만두까지(Way to go Nepal)


티벳(중국)과 네팔을 잇는 우정교(Friendship Bridge)

티벳과 네팔은 에베레스트를 비롯하여 히말라야 산맥에 의해 나뉘어진다. 즉 티벳에서 네팔을 갈려면 이 산맥을 넘어야 하며 중니공로(혹은 우정공로)라고 불리는 험난한 도로이며 그 만큼 풍광이 아름다운 길 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프랑스할머니가 내 방문을 두드린다. 아마 가는 길이 걱정인가 보다. 여기서부터 네팔국경과(코다리) 인접한 국경마을 장무까지는 제대로 된 교통편이 없다. 또한 실제로는 퍼밋이 필요한 구간이기도 하여 나로서도 조금 걱정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틈날 때 마다 물어봐도 여기 사카에서 큰길(중니공로)까지 나가는 버스 시간이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침을 먹으면서 숙소스텝에게 물어보니 직접 버스가 있는 곳에 가 확인하지만 점심때나 다 되서야 출발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길가로 나가 차를 알아본다. 쉽게 트럭을 잡아 큰길 까지 나간다. 이제는 히치를 해야 한다. 종이에 큼지막하게 다음 도시인 팅그리를 한자로 쓴 다음 기다려 본다. 너무 이른 시간인가?
경운기 몇 대 만 지나갈 뿐 제대로 된 차가 안 보인다.

30분이 지났을 때 주유차 하나가 지나가 세워 보지만 이 또한 이 근처 마을인 라체까지만 간다고 한다. 할머니는 지쳤는지 도로가에 가방을 깔고 무심히 지켜볼 뿐이다. 1시간이 지났을 때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한 대가 온다. 저 정도 속도이면 지프일텐데....얼른 종이를 펴 차를 세워 본다.

운이 좋았다. 한시간만에 팅그리 가는 차를 잡은 셈이다. 그것도 내가 티벳에서 타 본 차 중에서 가장 좋은 도요타 랜드크루즈 4500이다. 자리는 텅 비어 있어 나는 운전 보조석에 혼자 편히 앉아 간다. 앞과 양 옆으로 사진같은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사진> 60이 넘어도 한 참은 넘어 보이는 프랑스 할머니..

붉은 스웨터를 입은 그녀는 이 곳의 황량한 풍경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녀는 나를 잡고 한참을 얘기하기도 한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에서 인도의 레 나닥까지...내가 불어를 못 알아 듣는 것을 알면서는 틈만 나면 날 잡고 얘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아마도 누군가 말할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차는 라체를 지나자 곧 비포장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얼핏보니 차 유리에 티벳-중국 여행사라는 스티커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 네팔에서 넘어오는 여행객을 실으러 장무 까지 가는 길이 아닐까? 예정대로라면 팅그리에서 일박 후 장무까지 가는 차를 한번 더 히치를 해야 되지만 운이 좋으면 오늘 바로 갈 수도 있겠다 싶어 물어본다. 장무까지 가는 길이라고 한다. 한 번 더 물어본다. 장무까지 가면 얼마를 내야 하냐고?

잠시 침묵이 흐른다. 서로 담배를 권해 주고 불도 붙여 주면서 친한척을 해 본다. 그리고 머리속으로는 서로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난 속으로 200RMB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종이에 150RMB(22,000원)을 써 보여준다. 거의 사카에서 부터 온 셈이니 내가 알아 본 트럭히치가격 보다도 조금 저렴한 가격이다.


중니공로 상에서...저 멀리 에베레스트 산이 보인다.

네팔로 넘어가는 중니공로는 라사와 국경마을인 장무를 잇는 주 도로이다. 이 곳 풍광은 다른 여타의 티벳길 보다 시야가 넓어진다. 길은 비포장 이지만 곧게 뻗어 있어 저 멀리 에베레스트 산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히말라야 산맥이 양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기도 하다. 다른 곳은 유목민들이 종종 보이기도 하던데 이 곳은 라체, 팅그리를 빼고 사람구경 하기도 힘든 곳이다.

가는 길에 여러번 체크포인트가 있다. 때로는 간단하게 여권 검사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2-30분을 기다리기도 한다. 다행히 퍼밋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운전사는 뭐가 그리 급한지 점심도 건너뛰고 계속 차를 몰아댄다. 그냥 30분에 한 번씩 테이프를 바꿔 낄 뿐이다. 중국노래가 나오고, 티벳노래가 나오고, 힌두음악도 나오고 그리고 팝송도 흘러 나온다. 차 안의 테이프를 순서대로 다 넣은 것 뿐이리라.

그리고 저녘이 가까워 졌을 때 차는 굽이굽이 돌더니 드디어 히말라야를 넘은 것 같다. 이제 내리막 길이다. 갑자기 푸른 초목이 눈에 들어온다. 히말라야로 치자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넘어온 셈인데 여기부터 기후대가 아열대로 바뀐다. 확실히 숨쉬기도 좋고 대기중에 습도도 높아진다. 저 밑으로는 계곡에 힘찬 물소리도 들린다.

점심을 건너뛰고 속도를 낸 덕분인지 차는 해가 막 질 때쯤 목적지인 장무에 도착한다. 이곳은 언덕 비탈에 마을을 세워 놓아 다른 티벳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해발 2000m대로 선선한 초여름 날씨이다.

반면 어느 국경도시 처럼 좋은 인심은 기대하기 힘들 것 이다. 여기부터 네팔리(네팔사람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꼭 인종 전시장 같은 것이 묘한 활력을 갖고 있다. 간판에도 이제는 티벳어, 중국어, 네팔어, 영어가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좁은 도로에는 네팔과 티벳을 왕래하는 트럭들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인도산 TATA 트럭도 보인다. 차 꽁무니를 보니 역시나 Horn Please(경적을 울려 주세요)가 써 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은가?

<사진> 장무의 골목 풍경


<사진> 장무의 마을 전경.
장무와 코다리는 계곡의 좁은 길 사이에 위치해 사진처럼 좁고 높은 형태의 건물들이 많다.

숙소에 체크인 하고 어슬렁 거리니 역시나 환전상들이 달라 붙는다. 볼 때마다 계속 물어본다. 말하는 환율이 다 고만고만 하다. 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래킹을 건너뛰니 수중에 20만원 정도의 중국돈이 남아 있다. 네팔로 넘어가기 전에 바꿔야 한다. 결국 1RMB=8.875NPR(2004년 5월 기준, 1네팔루피=16.1원)로 바꾼다.

숙소로 돌아오니 안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네팔에는 번다(정치적 파업)가 앞으로 3일 후 까지 진행되어 버스와 상점이 모두 중단되며 산사태가 두 군데 생겨 길이 막혔다는 소식이다. 숙소 주인의 말이니 반만 믿을 생각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 이민국으로 가 체크를 해 본다. 다행히 네팔로 가려는 사람이 줄을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민국까지 문을 닫은 것은 아닌 듯 싶다. 몇 일 있을까 하다가 잘못하면 번다 때문에 갇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숙소에서 만난 일본인과 함께 국경을 넘을 준비를 한다.

어떻게 넘을 거야? 하고 물으니 걸어서 간다고 한다. 하하! 기다렸던 대답이다. 길은 내리막길을 굽이굽이 이어져 2시간이면 저 국경을 잇는 우정교까지 내려 갈 수 있다고 들었다. 마침 인터넷의 지도를 카피하기 귀찮아 아예 카메라로 찍어 놓은 것이 있다. 여기엔 지름길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를 이용하면 4-50분이면 내려갈 수 있다고 한다. 지름길을 찾아 내려가니 이거 생각보다 길이 안좋다. 아침에 비가 내려 길이 미끄럽고 어떤 풀을 스치게 되면 긴바지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쓰라립다.

두번째 지름길은 더욱 가관이다. 이거 완전 밀림트래킹 수준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배낭을 메고 산길을 탄 것은 5개월 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얼핏 들어봐도 20kg은 족히 넘으니 이거 완전 극기 훈련이다. 길도 미끄러워 엉덩방아도 몇 번 찧고 몸은 완전 땀 범벅이 된다. 옆의 친구는 그래도 괜찮은지 이런 길은 자기 생에 처음이라며 오히려 싱글벙글이다. 혼자 이 길을 갔으면 투덜투덜 되었을텐데 둘이 가니 그래도 나은 편이다. 하지만 결국 지름길은 두 번 이면 충분할 듯 싶어 다음은 차도로 방향을 잡는다. 어차피 지름길을 타도 시간은 엇 비슷하게 걸리는 것 같다.


도로로 방향을 바꾸자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인다. 때론 니하오로, 때론 쟈시델레로 때론 나마스테로 인사를 건네본다. 그들은 누구일까? 길가 천막에 살림도구들도 보이는데....난민인가?
아니면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인가?

2003년 12월에 중국을 시작으로 한달 그리고 인도차이나를 지나 이번 운남성과 티벳을 묶어 두 달을 여행했으니 중국만 세 달 가까이 여행한 셈이다. 그리고 이곳이 마지막 중국이다.

가는 길에 짜이찌엔 차이나! (잘가라 중국) 하고 손을 크게 흔들어 본다.

 

<사진>국경을 잇는 다리 위의 마지막 중국측 체크포인트

비자 정보
네팔비자는 이 다리를 지나 입국신고시 받을 수 있다. 1년간 네팔을 다녀온 사실이 없으면(있으면 더 비싸진다.)
US$로 30불과 사진 한 장을 내면 즉석에서 60일 체류 단수 비자를 받을 수 있다. (2004년 정보)
앉은 자리에서 바로 내주니 굳이 라사에서 받지 않아도 될 듯.....


네팔측 마을인 코다리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움직인다. 산사태가 난 지점까지 버스가 운행되고 걸어 넘은 다음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되며 중간 지점에서 한 번 더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오늘 안에 과연 갈 수 있을까?

버스를 타자 이번에는 차장이 나에게 말한다. 만원만 내면 바로 지금 출발시키겠다고....기다린다고 말하고 마냥 기다려본다. 산 너머 산이다.

이번엔 외국인 원정대 팀이 버스를 통째로 빌린 모양이다. 쌀 한 가마디 부피되는 가방을 100여개 가까이 싣는다. 나보고 내렸다 다시 타라고 한다. 지붕과 버스 뒷 쪽 반은 그들 짐으로 다 채운 셈이다. 웬지 얼굴에 잔뜩 거만이 그득그득한게 다가가기가 힘든 사람들이다. 다시 타자 버스가 출발한다. 산사태가 난 지점에서 버스는 잠시 서더니 운전사를 바꿔 이를 넘으려고 한다.

좌우로 15도씩 기울어지면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이거 앞좌석을 움켜지고 위태위태 해진다.

난 생각한다. 버스가 엎어질려면 몇 도나 기울어져야 할까 하고...
이론적으로는 45도 인가? 아니지 지붕위에 짐을 잔뜩 실었으니 무게중심이 바꼈고 버스의 내용물(사람과 짐)이 우르르 몰리면서 그냥 엎어질 수 있지..
그래도 30도 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생각한다.
윈쪽으로 엎어지면 왼쪽에 탄 사람이 덜 다칠까?
아니면 오른쪽에 앉는 것이 더 안전할까?

그리고 버스는 첫번째 산사태가 난 지점을 넘는다. 이젠 걸어가 갈아타야 한다. 넘어가니 공공버스는 없고 원정대가 통째로 빌린 다른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 버스는 카투만두로 바로 간다고 한다. 이번엔 내가 아쉬운 셈이다. 으 제기랄! 방긋방긋 웃으면서 다가가니 운전기사한테 말하라고 한다. 운전기사는 바로 일반버스의 5배 정도를 요구한다. 덧붙이기를 버스가 있을 지 모르고 오늘 아니면 3일 동안 번다(파업)때문에 버스가 없다고 한다.
오늘은 정말 산너머 산이다.

가격이 잘 안 깍여진다. 버스가 출발할때 배낭을 꿰차고 걸어나갈 준비를 하자 결국 반으로 깍여진다. 버스는 또 굽이굽이 산길을 헤쳐 나간다. 창밖으로는 아담한 마을들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한 4시간 쯤 달렸을까? 버스는 드디어 카투만두에 도착한다. 네팔에 들어가는 마지막 신고식이 남아 있는지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를 흠뻑 맞으면서 더 어두워 지기 전에 숙소를 잡는다고 그 빗속을 헤맨다. 2000원짜리 방에 체크하고 그 앞 한국식당에 가 맥주와 고기를 실컫 먹는다.

여하튼 카투만두에 도착했다. 그것도 하루 만에 말이다.

네팔에 들어온 신고식을 톡톡히 치룬 셈이다.


<사진> 카투만두 한 거리의 모습
여기서부터 같은 아시안이라도 몽골리안에서 아리안 계열로 인종이 바뀌게 된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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