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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바꾸다 -Change the Route


포타나의 저녘 풍경

돈 쓰기의 어려움
돈을 벌기가 어렵지, 돈 쓰기가 뭐 어렵겠냐만 여기선 돈 쓰기도 만만치 않다. 쉽게 말하면 합리적으로 쓰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나는 작은 돈-길에서 차를 마시거나 가까운 거리의 택시를 타거나 하는-은 별 생각 없이 쓰고 큰 돈은 여기저기 비교해 가며 신중하게 쓰는 편이다. 반면 엉스는 나와 반대이다. 그녀가 가장 아끼는 것은 치약-그녀가 치약을 짜내는 기술은 거의 경이롭기 까지하다.-과 쓰레기 봉투-쓰레기 봉투를 아끼는 기술은 아직 우리 어머니에게 한 참 밀린다.-이다. 그런 그녀가 생각없이 들렸던 쇼핑센터에서 불쑥 물건을 들어 카드를 결재하는 것은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럴때면 인터넷으로 똑 같은 물건을 찾아 가격을 비교해 주는데 그때 엉스가 투덜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의 작은 낙이다.

날이 제법 덥다. 포카라가 이렇게 더웠나 싶을 정도로 덥다. 그늘만 들어가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 에어콘이 부럽지 않지만 가끔 그늘조차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때이다. 아침 일찍 움직였어야 했는데 어제 마신 술이 원인이다. 해가 중천에 떠 그 강렬한 일사광을 내 뿜을 때 좀솜가는 비행기표를 구하러 다니기 시작한다.
첫번째 집 82불-이 때 좀 깍아서 여기서 샀어야 했다.-두번 째 집 85불, 세 번째 집 90불-슬슬 열받기 시작한다. - 여기까지 왔으니 좀 더 움직여 보기로 한다. 그러다 몇 군데를 더 돌자 78불을 부른다. 표를 사고 퍼밋을 대행해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대뜸 대행료 200루피를 부른다.

이번엔 자전거를 빌린다. 근데 엉스한테 맞는 자전거는 없다-엉스는 작다.-. 엉스는 내심 잘 된 일이라 생각하고 대뜸 내 뒤에 올라탄다.이때 난 나혼자 다녀오겠다고 하자 그녀는 부부는 같이 다니는 것이라 하며 올라탄다. -그녀가 내 말의 행간을 잘 못 읽은 것 같다.-바람을 맞으며 한적한 도로를 달릴 길은 곧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언덕길을 오르는 고행길로 바꼈고 뭔 입장권 하나 끊는데 쓰라는 서류는 그렇게 많은지 그렇게 한나절이 훌쩍 간다.

계산을 해 보니 둘이서 뙈약볕아래 한나절의 발 품을 판 대가는 약 만 오천원 이다.
여기가 물가가 싼 나라라는 것을 감안해도 정말 잘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엉스한테 말한다.
"아까 퍼밋센터에서 이번주 좀솜 기온을 봤는데 최고 기온이 23도이고 최저기온은 15도래. 최고의 온도지. 이거 트래킹이 아니라 피서 가는 것 같지 않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공항으로 간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비행기는 제 시간에 출발하지 않는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세 시간이 흘렀을 때 우리를 호출해 탑승권을 끊고 보안검색을 하고 별도의 대기실로 들어가지만 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기다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 두시간을 더 기다렸을 때 최악의 소식을 듣는다.
좀솜에 안개가 너무 껴 오늘 비행은 모두 취소된다는 소식이다.
다른 여행객은 모두 내일표로 바꾸지만 나는 살살 엉스를 꼬셔 보기로 한다.

"내일도 이짓을 해야 할 지 몰라.
아침 일찍 일어나 공항에 와서 또 언제 올 지 모르는 비행기를 기다리지."

"그럼 어떻게 해?"

"지금 떠날 수 있지. 비행기를 타고 묵티나트 트래킹을 할 예정이였지만 일정을 바꿔 ABC로 가는 거야. 여기서 택시를 타고 페디까지 가면 오늘저녘부터 시원한 곳에서 지낼 수 있지."

"거긴 힘들기만 하고 뭐 볼 것도 별로 없데며?"

"그래도 많이 가는 곳이니 한 번은 가야 해"

그렇게 우리의 일정은 묵티나는 트래킹에서 ABC로 손 쉽게 바꼈다.

마치 지리산가는 버스가 없어 설악산을 가듯이 말이다.

포카라 공항의 모습

 

 

 

포카라공항의 가장 큰 특징은 한적함과 무료함이다. 비행기가 제 시간에 뜨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 지 막막할 것이다.

처음부터 계단이다. 오늘 500m를 올라가야 한다. 직선거리로 1km 남짓에 고도차가 500m이니 다 계단인 셈이다. 전에 엉스는 이와 비슷한 곳에서 시작한지 30분만에 눈물을 훔쳤지만 이번엔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결연한 표정은 아니다. 정 힘들면 투덜대곤 하지만 대부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이다. 그것이 첫번째와 두번째의 차이이다.

 

 

 

 

 

잠시 포카라로 들어가는 강줄기가 굽이굽이 흘러가는 것을 보며 쉬면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씯어낸다. 그 바람 한 줄기에 화색이 돈다. 계단을 오를때는 씩씩거리다가 또 얕은 내리막이 나오면 싱글벙글이다.

감정의 기복이 미친년 널 뛰듯 한다.

여행이 인생의 종합판이면 산행은 여행의 엑기스이다.

산에오는 사람들은 어쩌면 일상의 지지분분한 지루함을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저 멀리 포카라가 보인다.

오늘 종착지인 마을 담푸스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까지 도로가 뚤렸다. 버스가 다닐 수 있는 길은 아니지만 지프나 경험있는 택시는 가능하다. 그렇게 택시를 대절 해 와서 두 세시간 보고 가니 이 작은 마을 인심이 사납다. 길 한 번 알려주고 손을 내미는 사람부터 휑뎅그레 베틀 하나 가져다 놓고 숄을 잔뜩 편 쳐 보인다.
난 이제 트래킹을 시작하느라 짐을 늘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얼굴에 싫은 기색을 드러내며 손사레를 친다.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스쿨펜-제발 볼펜 좀 뿌리고 다니지 말자. 중국산 100원 짜리 볼펜 하나 준다고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을 달라고 달라 붙는다. 나 같은 여행객이 이렇게 만든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곳은 정이 안 붙는 것도 사실이다.

밤에 잠이 깼다. 은하수라도 한 가득 밝혀주면 좋겠지만 대신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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