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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 - Way to go down


ABC중 가장 이쁜 마을의 하나인 간드룩

내려가는 길은 쉽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왔던 길을 되집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에 문제가 없다면 푼힐을 들릴 수 있고 굳이 같은 길이 싫다면 페디나 나야폴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옵션은 있다. 푼힐을 염두에 두었다면 ABC보다 푼힐을 먼저 들리는 것이 좋다. 그것은 마치 큰 숙제를 먼저 하고 나면 작은 것들은 쉽게 넘겨 버리는 이치와 같다.

우리 경우가 그랬다. 내심 푼힐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내려가는 길은 별 신경을 안 쓴 터라 길을 잘못든 것을 알았을 때 차라리 잘 된 셈이라 생각한 것이다. 여하튼 내려가는 길은 쉽다. 굳이 내리막이 오르막 보다 쉽다는 물리적인 법칙만이 아니라 출근길 보다 퇴근길이 쉽다는 심리적인 것이 더 크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점이 있다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뭐 술꾼들이야 4000m 이상에서도 술을 푸지만(술은 혈중 수분을 소모시키므로 고산증에 좋지 않다.) 역시 권할 것은 아니다.


ABC코스에서 이정표는 역시 마차푸차레이다.
포카라에서 멀리보이는 봉우리가 점점 가까워 지고
드디어 그 옆으로 살짝 비켜 넘어서는 것이 ABC 루트이다.

ABC에서 가장 큰 마을 촘롱에는 슈퍼가 있다. 물론 물건들은 포터의 근육을 이용해 옮긴 것들이야 도시보단 비싸지만 롯지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맥주 한 캔을 따 단숨에 비워본다. 내친김에 참치캔을 따 본격적으로 자리를 핀다. 땀을 흘린 터라 맥주는 시원하게 가슴 속까지 적신다. 역시 달작지근한 홍차보다도, 케로신 냄새가 살짝 풍기는 끓인물 맛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엉스의 속도가 느리다. 그녀는 갈 길이 걱정되나 보다. 난 5분만 가면 몇 일전에 묵었던 숙소가 나올거라고 안심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30분은 더 올라가야 한다고 하며 간신히 목만 축일 뿐이다.
불과 몇 일 전에 걸어 온 길이지만 이렇게 서로의 기억은 다르다.

결국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리고 그녀는 현명했다.
맥주 몇 캔에 다리가 풀렸고 5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계단에 주저 앉았을 때 엉스가 아무 숙소나 잡아 체크인을 한다. 차라리 맥주를 사와 숙소마당에서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앞 선다. 채 끝나기도 전에 미리 축포를 터 뜨린 벌이다.

내려가는 길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올라가는 길에는 대충 알면서도 숙소주인에게 그리고 여행자에게 '얼마나 걸리느냐?', '길은 찾기 힘드냐?', 등등 이것저것 챙겨 떠나지만 내려오는 길은 이것도 귀찮아 그저 방향만 잡을 뿐이다. 한 참을 내려오다가 드디어 길이 끊어진 것을 알았다. 오래전에 폭우가 내려 현수교 두 개와 일부 농가와 밭을 쓸어 버린 것이다. 우기가 아니면 신발을 벗고 건너면 그만이겠지만 밤새 내린 비로 무릎 위까지 차며 물살 또한 꽤 거세다. 어떻게 할 까 망설이다가 현지인 한 명이 다가오더니 우리가 건네줄 수 있다고 한다. 슬쩍 도네이션을 얘기한다. 이런경우에는 속 편하게 가격을 물어보는 것이 낫다. 200루피를 얘기한다.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묻는다.

"두 명에?"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난 잠시 더 생각해 보겠노라고 말할 때 서양인 두 명은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돌아가는 길은 정식 등산로가 아닐 터이니 가이드가 있는 그팀은 문제가 없지만 우리는 돌아가는 길을 제대로 찾기도 만만치 않다. 엉스는 그만 건너 가 보자고 엉덩이를 털며 먼저 일어선다.-출렁다리를 건널 때 마저도 금방 울음보를 터 뜨릴 것 같은 아내가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나는지 궁금하다.- 결국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건넜다.

죽지 않으면 모두 추억으로 남는다. 그런데 가끔 그 경계가 어디쯤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해프닝은 딱 떠들 수 있을 만큼만 생긴다.


사내들의 도움을 받아 등교하는 아이들
승질 드러운 여행자가 이 것을 본다면 외국인한테 삥을 뜯는다고 불평을 하겠지만 이도 나눔의 한 방법이다.
누군가 돈을 내지 않는다면 아무리 할 일 없는 총각들도 아침부터 나와서 저 짓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마을인 간드룩에선 주인집 딸내미가 한국에 가 일한다고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그녀의 딸내미가 한국에 도착해서 이 산골로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그녀의 찻 마디가 꽤 인상적이였다.

"엄마! 여긴 너무 깨끗해요."

수 천킬로미터를 날아가 내민 첫 마디가 깨끗하다라니, 나도 가끔 걱정이 된다. 나중에 나이드신 어머니가 왔을 때 네팔에 대한 첫인상이 아니, 어쩌면 돌아가 사람들한테 할 얘기가 결국 네팔은 지저분해! 그 한마디로 요약될까봐 말이다.

길은 이제부터 쉬워진다.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계단이 끝난 셈이다. 완만한 내리막길에는 가슴두근거리게 하는 그 찡한 맛은 없지만 주변을 찬찬히 둘러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푼힐을 놓친 것이 아쉽지만 그렇다가 되집어 가기에는 너무 먼길을 내려 온 셈이다. 아니 이제 내려가 따뜻한 물에 제대로 샤워를 하고 삽겹살을 먹을 수 있다는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 매혹적인 제안이다.

몇 일 지나면 좀 더 있다 내려오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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