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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패스 넘는 날 -A day across Cho-La pass
Gokyo(4790m)-Dragnag(4700m)-Cho-La(5330m)-Dzonglha(4830m)


초라패스를 막 넘고 나서 바라보이는 풍경

이곳 쿰부지역은 남체 위로부터 고쿄로 가는 길과 에베레스트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칼라파타라로 가는 길로 나뉘어 지고 이사이를 가로지르는 희미한 간선이 하나 있다. 그것이 초라패스이다.

겨울엔 닫힌다고 했다. 열려있다고 해도 혼자 넘지 말라고 했다. 계속 물어보고 다녔다. 남체에서 초라패스를 넘은 트래커를 한 명 만났고 고쿄에서도 되집어 온 한 남자를 만났다. 트래커는 가이드와 함께였고 한 남자는 여기서 사는 사람이였다. 숙소 정보도 체크한다. 이틀전의 정보에 의하면 초라패스 앞 뒤로 있는 두 숙소가 모두 열렸다고 한다. 그 두 숙소가 모두 닫히면 하루안에 넘기 힘든 코스이다. 또 물었다. 길은 찾기는 쉽냐고? 그는 일부는 길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이 극한 까지 밀어 붙이는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삶에 대한 열정인가?
아님 없는 열정을 쥐어짜보자는 것인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고와 디디가 나누는 대사가 생각난다.

'뒤집어 흔들어 보라고'
-그래 봤자야-
'쥐어 짜 보라고'
-그래도 소용없어!-

여길 넘지 못하면 왔던 길을 되집어 돌아가야 하고 한 번은 넘고 싶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아득한 트레일을 혼자 투벅투벅 걷고 싶었다. 안나푸르나의 토롱라패스를 넘을 때 찍었던 사진이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려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가 된 것 같다.


빙하위에 간간히 사구가 보인다.


간간히 빙하가 잘려진 단면이 보인다.

첫날은 쉬웠고 3시간 만에 도착했다. 길이 희미한 빙하지만 거의 대부분 모래로 덮혀있다. 간간히 잘려진 단면을 보면 눈으로 이루어진 나이테가 보인다. 저 눈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수 십, 수 백년? 어쩌면 히말라야의 역사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저 눈도 언젠가 녹아 바다에 닿아 하나됨을 꿈꿀까?

숙소에 도착하자 스텝 한 명 뿐이다. 내가 넘어온다는 얘기를 듣고 그제나 어제 기다렸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몇 가지를 챙겨 길을 나선다. 물이 좀 부족할 것 같아 콜라를 한 병 사고 점심으로 먹을 계란을 삶아 달라고 했다.


풍경은 점점 거칠어진다.


하마터면 이곳으로 갈 뻔 했다.

세 시간 쯤 오르자 언덕에서 아래가 한 눈에 펼쳐진다. 왼쪽을 틀어보자 패스처럼 보이는 까마득한 길이 보인다. 저것이 혹시 초라패스? 양 어깨 사이로 빙벽이 흘러내려 얼어있었다. 저길 어떻게 넘어? 저건 트래킹이 아니라 빙벽 등반이잖어?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초라패스도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다른쪽으로 뻗어있는 희미한 트레일이 보인다. 경사가 40도쯤 되고 높이가 약 300미터 되는 언덕이다. 한쪽은 토사가 흘러내려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한쪽은 거친 바위이다.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이 초라패스이다.

길은 아에 없다. 처음엔 자갈쪽을 택했다. 네 발로 기어올라 간다. 두 손을 짚은 모래더미가 무너지면 그 하중에 의해 간신히 딛고 있는 발도 함께 쏟아진다. 어디서 그런 순반력이 솟아나는지 온 몸을 던져 옆으로 피한다. 이번엔 바위길을 택한다. 내 무게 만큼의 바위로 이루어진 언덕도 마찬가지이다. 그 큰 바위도 잘 못 건드리면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쏟아져 쿠루릉 소리를 내며 수백미터 아래로 떨어져 나 간다.

마치 어느 햇살 좋은 조용한 오후 날 벽에 걸어놓은 액자가 갑자기 툭하고 떨어져 내리듯 말이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아찔해진다. 이제 반을 올라왔다. 지금 돌아가면 해가 질 때쯤 어제 묵었던 숙소로 돌아갈 수 있다. 위를 쳐다보면 딱 내가 올라온 만큼의 높이가 보인다. 도대체 이리로 가는 지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올라가는 쪽을 택한다.

이럴 때 경험이 있는 가이드가 있으면 그나마 쉬울텐데 계속 이리저리 헤매면서 올라가니 기운은 기운대로 빠지고 두 배는 더 걸리는 듯 하다. 결국 올라왔다. 내심 초라패스 정상에서 여유롭게 풍경을 보며 점심을 먹을 생각은 그 앞에 펼쳐진 얼음앞에서 산산히 무너졌다.

저기를 또 어떻게 넘지? 행여 넘는다 해도 저 뒤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초라패스 정상. 저기를 넘어 가야 하는데....

아이젠을 신고 넘어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빙판이 펼쳐진다. 멀리서 보면 장관이겠지만 여기는 해발 5300m이고 내리막 길이라 도대체 저 너머에 뭐가 있는 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느쪽으로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먼저 왼쪽으로 가 보자 거기는 크레바스가 놓여있었다. 오른쪽은 경사가 너무 급해 가운데로 나아간다. 아이젠(Crampon, 아이젠은 독어이다.)을 이용해 로보트가 걸어가듯이 한 발 한 발 얼음을 찍으면서 가로지른다. 잠깐 방수가 되는 바지를 덧 입고 미끄럼틀을 타듯 내려가 볼까 했지만 저 밑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어 관둔다.

끝에 다다르자 역시 낭떠러지이다. 그나마 오른쪽은 계단 비슷하게 나 있다. 얼음이 녹고 다시 얼으면서 쐐기 모양의 그것이 촘촘히 박혀있다. 아! 오늘은 평생 할 것을 하루에 다 하는 듯 하다.
아이젠을 신은 발로 얼음을 깨며 내려온다.


여길 내려왔다. 뭐 두 번 다시 이 길을 택하고 싶지는 않다.

언덕에 올라서자 길이 굽이굽이 보인다. 드디어 넘긴 넘었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언덕에서 굽어보자 오늘 잘 숙소가 희미하게 보인다. 오늘은 저기까지만 가면 된다. 간만에 풍경을 감상하며 늦은 점심을 챙겨먹는다.

투벅투벅 걸어내려오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산에서는 사막처럼 스케일이 감이 안 온다. 위에서 볼 때 두 시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벌써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헤드랜턴으로 발 밑을 비추며 나아간다.

이제 완전한 어둠이다.
그런데 전과 달리 이번엔 무섭지 않다. 왜 일까? 두려움이 무서운 것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 두려움 그 자체이다. 내심 숙소를 못 찾으면 비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게 추운 사막에서도 별을 보며 캠핑을 하지 않는가? 단지 여기가 좀 더 추울 뿐이다. 그리고 별은 여기가 더 많이 보인다.

이제 숙소 찾기를 포기하고 바람을 막을 바위를 찾기 시작할 때 거짓말 처럼 어둠속에서 숙소가 나타난다. 그런데 숙소가 닫혀있다. 나마스테, 헬로우 하고 소리쳐 보아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이틀전에 넘어 온 가이드얘기로는 분명 열렸다고 했는데 또 한 번의 낭패이다.
도대체 오늘은.... 하고 생각하니 배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숙소를 찾았으니 밖에서 잘 수는 없지 않은가?

숙소 두 군데를 천천히 돌며 혹시 열려진 창문이 있나 확인해 보지만 헛수고이다. 그나마 오래된 집이 쉬울 것 같아 문짝을 발로 걷어찬다. 몇 번 힘껏 차 보자 문고리가 떨어져 나간다. 그래도 문짝을 부수는 것이 유리창을 깨는 것 보단 견적이 덜 나올 것 같다.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이왕 문짝을 부술거면 새집을 부술것을 하고 후회한다. 문을 닫은 지 몇 달이 지난 것 같고 내가 본 최악의 숙소였다. 다행이 야크똥이 남아있어 난로에 불을 지펴본다. 내가 뭘 잘못 했는지 연기가 한 가득되어 식당안은 가스실이 된다. 한 시간을 밖에 나와 추위에 떤다.
식당말고 숙소문짝을 부술것을 그랬나? 그래도 문짝 두 개를 고장내기에는 면목이 없다. 돌로 쌓은 의자위에 매트리스를 주어다 깔고 잠을 청한다.

소리가 들린다. 바람소리일까? 사람 소리일까?
신경을 곤두세워보지만 결국 바람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고 편안한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 미안하다는 편지를 쓰고 적당한 액수의 수리비를 놔 두고 길을 떠난다.

여기서 잤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넓게 잤다. ^*^

오늘 문제는 물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숙소 주전자의 물은 몇 달이 지나 보였고 또 뭐가 잔뜩 껴 있어 끓여도 먹을 성 싶지 않아 보였다. 방향을 약간 틀어 가장 가까운 마을로 향한다. 가는 도중 셀파를 한 명 만났고 그는 나에게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는다. 내가 대답하자 그는 다시 그 숙소가 열렸냐고 묻는다. 나는 사정을 설명하고 너는 거기에 사냐라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 그는 새 숙소의 스텝이였던 것이다.
내가 어제 너를 찾았다고 하자 그는 한 가이드로 부터 내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그제와 어제 오후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 혹시 물 가진 것 있어?-
"아니 없어"
-여기서 가까운 마을까지는 얼마나 걸려?-
"한 시간 이면 될 거야!"

속으로 생각한다. 셀파말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두 시간은 걸리겠군!


이 숙소를 발견했을 때 거의 환호성이 나왔다.^*^

그렇게 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주트레일이기 때문에 길이좋고 숙소의 질도 좋을 것이다. 오늘은 럭셔리하게 보내자. 도착하자 마자 물 대신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비우고 뜨거운 물을 부탁했다. 섞지 말고 아주 뜨거운 물 한 양동이와 차가운 물 한 양동이 총 두 통이야! 이름하여 핫 워터 버킷샤워이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편안한 낮잠을 즐긴다.

아주 길고 긴 몇 일을 보낸 것 같다.


이제 이 사진은 내 휴대폰 바탕화면으로 사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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