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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술 먹기 좋은 날. 계엄령-A Good day for day drinking. Curfew


로얄자가 붙은 네팔항공은 늘 그렇듯이 두 시간이나 늦게 출발한다. 보딩패스를 받을 때 잔머리를 굴려 히말라야를 보기 위해 우측 창가자리를 부탁했으나 비행기는 이미 해가 진 후에 이륙을 한다. (하! 잔머리 굴리지 말기로 결심한다. ^*^) 도착 후 비자를 받고 짐을 찾자 배낭 여기저기 열어 본 흔적이 보인다.
잃어버린 것이 없나 대충 확인해 보니 딱 담배만 없어졌다. 같은 주머니에 등산용칼이나 작은랜턴등도 있었는데 딱 담배 한 갑이 빈다.

참나! 전에 에어인디아를 탔을 때는 3000원짜리 중국산 알람시계 하나 달랑 빼가더니 이젠 담배 한 갑이다.
스스로 박시시 잘 챙겨 간다.

시계를 보니 11시다. 요즘 카투만두에 야간통행금지령이 내렸다. 허가를 받은 공항택시를 타고 타멜로 향한다. 사람 한 명 안 보이는 검은 도시를 가로지른다. 개들만 어슬렁거리는 검은 도시에는 곳곳마다 무장군인이 검문을 한다. 운전사가 받은 퍼밋과 작은 손전등으로 내 얼굴을 비추며 한 마디 묻는다.

'Where are you from?'

네팔에선 이 질문에 대한 대답 한 마디가 두툼한 퍼밋보다 중요하다.
네팔에서 최고의 카스트는 투어리스트이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 자정이다.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와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의해 짐짝처럼 실려 결국 자정에 도착한 것이다. 시차까지 감안하면 결국 만 하루이다.

맥주 한 병 시켜 스스로 자축 후 잠에 든다.

첫 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한 술 더 떠 한시적으로 계엄령과 주간에도 통행금지령이 내린 날이다. 첫날 부터 꼼짝없이 숙소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고만고만한 여행자들과 고만고만한 얘기들을 나누며 하루를 보내긴 싫다. 그래도 첫날이지 않은가?
아침을 먹고 친구를 찾아 나선다. 세계일주를 하는 친구가 지금 여기 있다.
여행자처럼 보일려고 일부러 카메라를 목에 걸고 지도를 손에 들고 길을 나선다. 텅빈 거리의 30m마다 무장군인들이 보인다. 이럴 땐 주춤대지 말고 먼저 선수를 쳐야한다. 웃으면서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보내자 역시 무사통과이다.

친구를 찾아내자 그가 내 뱉는 한 마디

"아니! 어떻게 왔어?"

-너 보고 싶어 왔지!-

오랜만에 만나는터라 우르르하고 얘기보따리들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조용하다. 역시 술이다.

-야! 우리 술 먹으러 가자!
술 중의 최고의 술은 역시 낮술이더지 않더냐?-


계엄령이 내린 텅빈 타멜 거리

오면서 봐 둔 술집엔 역시 외국여행자들 몇 이 진을 치고 있었다. 와인 몇 잔이 들어가자 드디어 얘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친구가 묻는다

"야! 어디 따뜻하고 싼나라 없냐?
미얀마는 어때? 사람들이 좋다며?"

-응! 사람들이야 좋겠지, 그런데 최근 뉴스 보니깐 수도를 옮겼다는데...근데, 야밤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첩첩산골로 옮겼데. 야밤 도주하듯이 말야!-

"아니 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까봐 무서웠던 거지. 누가 그 시골까지 와 돌 던지겠어? 그리고 보니 정부가 개판인 나라가 사람들이 좋네, 여기 네팔도 그렇잖어! 마오들이 야당하고 연합을 한 것을 보니 아직 힘을 못 잡았나봐! 그럼 그렇지, 지금 왕이 누구야? 왕 될려고 부모형제 다 죽인 놈 아냐!
갈 때까지 갔다고, 갈 때까지 갔는데 뭐가 무서워? 죽기 아니면 살기지. 더 죽여야 돼!
그래야 좀 뭐가 바뀌든가 하지! 지금은 힘의 균형이 너무 팽팽해!-

"그러면 네팔이 뭐가 바뀔까?"

-글쎄, 그건 모르지. 하긴 여기 타멜은 전쟁이 나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꺼야?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여행자들도 알고 있잖어-

"그런데 서양애들은 안 보이는데 왜 유독 한국인만 많지?"

-얼마전에 방송된 최진실의 힘이지. 그리고 또 우리는 군사문화에 익숙하잖어! 우리 고등학교때만 해도 교련복 입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M16을 들고 찔러총을 했잖어! 그리고 보니 꼭 민방위날 같지 않어?
이 계엄령 말야!
우리! 2차 갈까?-

"그래! 어디로 가지?"

-삽겹살 어때?-

꽤 오래된 식당인 쉼터는 이미 오래전에 사람이 다녀간 듯 테이블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어 마치 선술집 분위기마저 났다. 지글지글 굽는 삼겹살에 사이다 섞은 락시는 소주맛이 났고 술기운에 그 지독한 농담은 계속 도를 더해간다.

"어! 이제 계엄령이 풀릴 시간이네"

그 소리를 하자 때를 맞추어 시내는 정전이 되어 어둠으로 변한다.

-야! 치사하지 않냐? 데모하지 말라고 전기를 끊어버리게 말야-

어두운 거리에는 검은 그림자들이 잔뜩 모여있어 이상한 활기를 띄고 있었다.

"야! 이럴 땐 촛불시위가 딱이겠네!"

-그래! 우리나라 촛불시위할 때 남은 컵 잔뜩 있을텐데 그거나 공수해 주면 좋겠다.
거기에 뭐라고 써 있는지 알어?-

"아니 몰라!"

-독도는 우리땅-

3차는 티벳탄 식당에 가 퉁바로 한다. 수수로 만든 대나무통술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빨대로 먹는 술이다.

-야! 나 티벳에선 이거 한 번도 못 본 것 같애!-

"원래 여행이 그런거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지!"

그렇게 술자리가 이어질수록 그 지독한 농담은 계속 되었다.

농담중에 최고의 농담은 첫번째 술자리였다. 여기는 중정으로 이루어진 아늑하고 세련된 공간이였는데 2층의 중정으로 난 이쁜 창을 열고 외국인 한 명이 손을 내밀자 그 밑에서 친구인 듯한 외국인이 소리친다.

"헤이! 쿠마리!"

그 소리를 듣고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지만 어쩌면 서빙을 하는 네팔리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지 모르겠다.

지독한 농담이였다.
총을 들고 있는 군인이, 아무도 없는 유령같은 도시가 부담스러워 그렇게 지껄였는지 모르겠다.


다음날에도 시내 곳곳에는 군인이, 경찰이 배치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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