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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의 친절에 의지하다. Depend on Stranger's Help
Machermo(4470m)-Gokyo(4790m)-Gokyo-Li(5360m)


고쿄리 중턱에서 본 고쿄

길은 점점 더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난다. 이미 수목한계선을 완전히 넘어 나무가 아니라 덤풀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야크가 살까?

야크 목에 걸린 방울소리는 마치 산사 처마 밑에 달아놓은 풍경 소리만큼 아득하다. 바람이 불 때도 있다. 모자끈을 조여맨다. 그러다 바람이 잦아들면 갑자기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시간이 펼쳐진다. 마치, 내가 보고 있는 풍경속에 나 자신도 작은 정물이 된 느낌이다.

몇 일전의 카투만두에서였다. 타멜거리이다.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혼잡한 거리에 서 있을 때였다. 위에서는 팜송이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앞의 레코드점에서는 여행자를 위해 '옴마니밧메 홈'의 독경소리가 스피커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작은 거리를 스즈키택시가 그리고 릭샤들이 비집어 들어오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빠져 나가는 혼잡한 거리였다. 아이를 안은 한 엄마가 내게로 다가와 손을 내민다. 내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지르자 쉽게 포기하고 도로 맞은편으로 가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바로 그 때, 그녀는 짦은 순간 아이에게 웃음을 보였고 그 때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자동차 경적소리도 하나도 들리지 않는, 세상이, 풍경이, 나조차도 붕 떠보이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그 강력한 경험이 이 황량한 길 위에 겹쳐 보인다.


고쿄가는 길의 첫 번째 호수

첫번째 작은 호수는 녹아 있었다. 그리고 한 쪽 끝에는 놀랍게도 청둥오리 쯤 되어 보이는 새들이 헤엄을 치며 놀고 있다. 갑자기 <호밀 밭의 파수꾼>이 생각난다. 주인공은 호수가 얼어 붙으면 오리들이 어디서 사는지 물어보고 다닌다. 그 생각을 하자 하일지의 <경마장>시리즈가,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까지 겹쳐진다.

나도 돌아가 전철안에서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다닐까?

-나 히말라야에서 왔어.

-거기 가면 뭐가 있는 지 알어?

-아무 것도 없어!

-가고 싶지? 가고 싶지? 가봐! 되게 이상해.


세 번째 호수는 거의 얼어 있었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고쿄리이다.

고쿄에 도착하자 다른 트래커들이 있는 지 물어봤다. 대만에서 온 12명의 그룹과 포터 가이드 7명 이라고 했다. 어디에 묵고 있는 지 물은 다음 그 쪽으로 옮긴다. 내심 그 쪽에 묵으면 저녁 늦게까지 난로의 온기를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사람들이 그리워 졌기 때문이다.

식당에 올라가자 단 한 커플만 남아있다. 내가 다른 이들은 고쿄리에 올라갈 동안 너희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택했냐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내가 탁월한 선택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올리자 그들은 웃는다.

창 밖을 보자 올라간 그룹들이 점이 되어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저길 올라가야 하나?

지도를 보니 오전보다 오후가 광선이 날 것 같아 점심때 쯤 출발을 한다. 숙소에 부탁한 삶은 달걀 세 알과 물통 그리고 윈드자켓를 허리에 감고 출발을 한다. 숙소에서 빤히 보이는 언덕이다.

하지만 숙소가 4800m이고 말이 언덕이지 600m차이나는 5000m급 봉우리이다. 경사가 급해 길은 지그재그로 나 있다. 근육을 수축 이완시켜 한 발자욱 띄우면 30cm가량 나아간다. 그러다 15cm로 줄어들고 급기야 내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한 발자욱 띨 때마다 숫자를 새어본다. 하나, 둘, 셋...스물 하나, 스물 둘, 그러다 제자리에 서 숨을 고른다.
뒤돌아 보면 내가 출발한 숙소가 호수를 끼고 한 눈에 들어온다.

내가 왜 여기를 오르고 있을까?
사람들은 왜 산에 오를까?
사람들은 집 떠나와 왜 이 고생을 자처할까?

여기까지 온 걸음이 아까워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도 러닝머신 위에서 뛰고 있는 것 보단 낫지 하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압구정 어디쯤에서 대형 휘트니스클럽을 보았다. 조명을 환하게 밝힌 창가에는 퇴근한 셀러리맨들이 쓰레드머신 위를 뛰고 있다.

픽쳐레스크하고 스펙타클하며 시네마토그래픽하다.

꼭 햄스터 같다.

중턱에 혼자 앉아 달걀을 까 먹는다. 그래도 역시 삶은 달걀은 히말라야 보다 완행열차가 제격인데 생각하고 다시 위로 오르는 길을 택한다. 꼭대기에는 작은 돌무덤인 쵸르텐사이로 룽다가 바람에 휘 날린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 지도를 꺼내본다. 아! 저기가 에베레스트고 저건 눕체정도가 되겠군. 잠시 더 붉은 햇살을 받기 시작할 때 내려오는 길을 택한다.


고쿄리에서 바라 본 파노라마. 우측에 에베레스트가 작게 보인다.


고쿄리에서 바라 본 풍경

4시 50분이다. 조금 내려오다가 올라온 길 과는 다른 길을 택한다. 밑에서 올려다 보니 호수를 끼고 도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찾으면 조금 돌더라도 투벅투벅 한적한 길맛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PM 5:00
해가 서산 봉우리로 넘어간다. 선그라스를 집어넣고 걸음을 빨리한다. 아직까지 네 발로 기어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길이 가파르다. 이거 어두워지면 낭패다 싶어 서두른다.

PM 5:30
헤드랜턴을 꺼내 불을 켠다. 좌우로 계속 흔들면서 내려와도 길이 안 보인다. 저 밑에 길이다 싶어 내려가면 그냥 작은 둔덕일 뿐이다. 내가 내 딛은 돌덩이가 우르르하고 미끌어 떨어지면서 육중한 소리를 낸다. 밑의 호수에서는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꾸르릉하며 둔중한 소리를 낸다.

PM 6:00
저 멀리 아래로 내가 묵고 있는 숙소가 보인다. 이미 식당에 불을 밝혀 놓았다. 저긴데, 바로 저길 가면 되는데 가는 길을 못 찾겠다.

PM 6:15
이제 사위는 어둠이다. 설 산위로 샛별이 보인다. 보름달이라도 떠 있으면 이렇게 어둡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설날이다. 설날엔 달이 안 뜬다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이제 헤드랜턴불빛은 발밑만 비출 뿐 길을 찾아내기에는 광량이 부족하다.
빠르게 퍼져나가는 어둠과 함께 두려움마저 온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숙소에서 마중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얄팍한 기대마저 든다. 자! 생각해 보자.
속도를 붙여 서둘러야 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위험하다. 괜히 발을 잘 못 디뎌 구를 수 있다. 천천히 가자! 방향을 아니 무서워 말자! 길은 분명 내 반경 30m안에 있고 설령 길을 못 찾는다 해도 한 두시간이면 갈 수 있다.
주저 앉아 담배를 하나 문다. 제기랄! 라이터가 잘 안 켜진다. 고도가 올라가면서 생긴 문제 중의 하나이다. 장갑을 벗고 천천히 붙여 본다. 한 참만에 붙는다.
내가 갈 곳을 바라보자 숙소 뒷편의 설산이 마지막 남은 잔광을 받아 뿌옇게 흐려 비현실적인 분위기마저 감돈다. 담배를 문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다.

PM 6:30
다시 일어선다. 왼쪽 오른쪽 흔들면서 내려온다. 그러다 갑자기 소리가 들린다. 난 처음에 환청인 줄 알았다.

"Hellow!"
-Where?-
"I am here"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자 거짓말처럼 두 명의 검은 형체가 보인다.
-Where am I have to go?-
"Down"
-Down straight?-
"OK"

경사가 급해 네 발로 30m쯤 내려가자 길이 나왔고 정말 그들이 마중을 나온 것이다. 처음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고맙다는, 미안하다는 감정과 함께 창피한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I am so sorry about disturbing you-
"It is OK, are you OK?"

그는 내가 민망한 것을 아는지 선셋은 어땠냐고 돌려 말하며 한 얘기를 들려준다.

삼년전 피크시즌에 한 일본인 남자가 있었어, 19살로 무척 어렸지!. 그도 너처럼 늦게 내려오다가 길을 잃은 거야. 그런데 그는 반 쯤 얼어붙은 호수를 택했지, 랜턴불빛을 보고 사람들이 모두 나갔지, 그러다 그는 반쯤 얼어붙은 호수 한 복판에 빠진 거야. 그 때 지켜보는 사람이 백 명이 넘었어. 그들 중 아무도 호수속으로 들어가지 못했지. 결국 아침이 되어서야 건져냈지.

그들의 발꿈치를 랜턴으로 비추며 돌아오는 길은 짧았고 단 15분 만에 숙소 마당에 도착했다. 숙소주인과 스텝 한 명은 날 위해 저녁을 준비하러 들어가고 난 마당에 앉아 담배를 문다. 그 짧은 순간 여러생각이 빠르게 교차한다.

내가 왜 여기 와 있는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되집어 돌아가면 일주일 안에 카트만두로 돌아가고 또 웨이팅을 걸어놓고 서두른다면 다시 몇 일 만에 보고싶은 얼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어제부터 고산증이 왓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머리를 쿡쿡 쑤셔대는 통증과 함께 소화도 안 되는 것 같다. 식사량을 반으로 줄인다. 자기전에 소화제와 진통제를 함께 먹는다.

침낭속에 웅크리고 누워 빼꼼히 열려진 커튼밖을 보자 은하수가 총총히 박혀있다.


야크가 보인다고 꼭 근처에 마을이 있을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은 아무데서나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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