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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파타르를 포기하다. -I gave up Kalapatala
Dugla(4620m)-Lobuche(4910m)-Dugla(4620m)-Tenboche(3860m)


고락셉 가는 길


어제부터 바람이 세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길을 떠나자 오늘은 잔뜩 흐려 눈이라도 올 기세이다. 아침부터 오버투라우저에 마스크까지 끼고 출발한다. 로부체에 들려 점심을 먹고 나서자 바람은 더욱 세진다. 맞바람이다. 방수가 되는 덧바지 까지 껴 입는다. 가릴 수 있는 곳은 다 가린 셈이다.

가는 길에 무덤가가 보인다. 산에서 산을 타다 죽은 사람들의 유골을 쵸르텐을 세워 담아 놓았다. 그 중에 하나가 눈에 띤다.

바부 치리 세르파의 무덤

솔로쿰부의 타크신두에서 1965년에 태어난 바부 치리 세르파는 그의 나이 13살 때 부터 산을 타기 시작했다. 나이 36살에는 세 개의 세계신기록을 갖게 되었는데,

첫째, 1995년 봄 이 주동안 2번의 에베레스트를 정복했으며 99년에는 무산소로 정상에서 21시간을 버텼으며 마지막으로 2000년 봄 단 16시간만에, 가장빠른 시간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기록을 세웠다.

2001년 4월 29일 일요일, 11번째 에베레스트 등정 중 그는 200피트의 크레바스에 빠져 사망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그들은 지나가는 길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힘들면 돌아가! 돌아가서 사람들하고 재밌게 살어. 뭐 찾아 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올라와 고생이야!'


두글라와 로부체 사이의 무덤가

칼바람에 눈이 섞여 날라온다. 눈보라이다. 대략 두 시간만 가면 마지막 숙소인 고락셉에 도착한다. 마지막 시험인가? 초라패스를 넘어 칼라파타라는 사이드 트래킹처럼 생각했는데 스틱을 쥔 손에 힘을 준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바위를 등에 기대어 잠시 쉰다. 그러다가 문듯 내가 왜 그곳을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쿄보다 200m가 높아서? 아님 에베레스트가 좀 더 가깝게 보여 엽서사진 찍기 좋아서?

그래! 돌아가자.

갑자기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 얼굴에는 환하게 미소가 번지고 있었고 눈보라마저나 정겨워 진다.

30분쯤 되집어 내려가자 하늘은 장난을 치듯 눈보라가 멈춰진다. 하늘에 대고 소리를 친다.

'하늘아! 이번엔 내가 이겼어!
날봐! 이렇게 행복해 하고 있잖니?
후회할거라고?
후회하면 어때, 나중에 또 들리지 뭐'

내친김에 로부체를 거쳐 어제 묵었던 숙소까지 내려간다. 결국 6시간 동안 꼬박 바람을 해쳤건만 제자리인 셈이다. 숙소스텝이 마당에 나와 있다. 멀리서 난 스틱을 쥔 손을 크게 흔들며 소리친다.

"Namaste again!
I gave up Kalapatala
So, I am happy'

그는 웃는다. 나는 그를 핸섬가이라고 부른다. 그는 3개월 전에 결혼 해 신부와 함께 여기서 일하고 있다. 얼굴에 행복이 그대로 드러난 채 말이다. 주방에 들어가 신부와 함께 일 할 때에는 그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식당에는 어제 본 한 명만 남아 난로를 쬐고 있다. 호주에서 온 젊은 친구이다. 그는 지리부터 걸어올라왔건만 로부체에서 지독한 고산증을 얻어 몇 번이나 앞으로 나아가다가 결국 포기하고 여기 내려와 상태를 지켜보는 중이다. 나는 상기된 채로 이 친구에게 떠든다.

-나 칼라파타라 안 가. 포기했어.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해!-
"아니 왜?"
-갑자기 내가 왜 거길 올라가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힘들잖어-
그는 웃는다. 그의 웃음을 지켜보다가 나는 묻는다.

-넌 내일 올라갈 거야?-
"내일 몸 상태를 봐서"

난 계속 상기된 채로 떠든다.
-행복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말이지. 욕구를 포기하는 거야!-
그말에 그는 약간은 희미해 보이는 미소로 답할 뿐이다.

오늘 밤 바람이 거세다. 지붕을 송두리째 날릴 것 처럼 무서운 소리를 낸다. 오늘 잠을 이루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 9시쯤 마지막 남은 난로의 온기를 즐기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심하게 두드린다. 이 시간에 누구일까? 숙소스텝의 얼굴에 일쑨 긴장이 감돈다.
네팔말로 몇 마디 주고받다가 결국 문을 열어준다. 좀 거만해 보이는 거구의 남자 세 명과 키가 작은 어린 남자 한 명이다. 물어보니 저 위의 이탈리안연구소에 있는 직원이고 키가 작은 한 남자는 밑에서 부른 목수인데 고산증증세가 있어 이 시간에 같이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별로 친근하지 않은 말투에 나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후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는데 그 어린 목수는 결국 고산증으로 사망을 했다고 한다. 이틀만에 5000m급까지 올라와 일을 시켰다고 한다.

산은 고개숙인 이들에게 그 멋진 모습을 잠깐씩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 엄하기도 하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나?

자연은 인간에게 결코 친근하지 않다고...

아침에 일어나 핸섬가이한테 그 호주친구는 아직 자냐고 묻자 그는 떠났다고 한다.
그 바람을 헤치고 고락셉으로 갔다고 한다. 어제밤 바람이 무척 거셋다. 마치 폭풍우라도 올 것 처럼 그 바람은 지붕을 때렸다. 그 또한 한 숨 자지 못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자 올라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어젯밤 바람에 화장실 문짝이 날라갔다. 핸섬가이는 못과 망치를 가지고 문짝을 고치러가고 아내는 그 남편을 도와주고 있다. 예의 그 까르르 까르르하는 웃음소리와 말이다.


숙소스텝 핸섬가이드와 그 아내

난 배낭을 꾸린다. 물론 내려가는 길이다. 그것도 미소를 잔뜩 띄운채 말이다.
길은 좋다. 그것도 얕은 내리막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길을 걷는다.


혼자 푼수짓을 다 한다.

마을이 보인다. 제법 예쁘고 큰 마을이다. 그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가 차이대신 창을 시킨다. 창은 티벳탄 술로 밀과 쌀을 섞어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맛이난다. 어차피 이젠 길을 찾을 필요도 없이 쉽고 또 내리막이다. 나이가 제법 되 보이는 주인이 직접 내 온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여기 숙소 광고를 봤어요. 85년도인가, 지미 카터가 여기 와 묵었다면서요?-
"그럼, 그 때 찍은 사진이 식당안에 걸렸있어"
-그럼 얼마나 여기 사셨어요?-
"한 30년 쯤 되었나?"

난 분위기를 띄울려고 짐짓 과장된 말투를 흉내내며 묻는다.

-살아있는 역사네요! 그 땐 어땠어요?-
"지금과 많이 달랐지. 세르파도 별로 없었고 트래커고 별로 없었어. 집도 오직 돌과 진흙만으로 지었지. 저기 보이는 저 Hut처럼 말이야. 그리고 많이 죽었어. 지금이야 이 쿰부지역에서 일년에 한 열 명이나 죽을까? 그러고 보니 저 번 달인가 안나푸르나에서 18명이 죽었어. 베이스캠프위로 눈사태가 덮친거지"
-한국팀이요?-
"아니 프랑스팀이야. 근데 요즘 한국인이 꽤 많이 와!"
-얼마전에 한국 TV스타가 와서 그런 걸 거예요
창 아주 잘 마셨어요. 더 먹고 싶은데 산 위라 참는 거예요!-

그렇게 다시 떠난다. 마을에는 어젯밤 바람에 날라간 지붕을 고치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마을을 벗어날 때 쯤 뒤돌아본다. 마을이 이쁘다. 이런마을 찾아다니며 여행하는 것도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내리막은 오르막길보다 설렁설렁다녀도 힘도 안 들고 두 배나 빠르다. 다음 마을에 들려 점심을 먹는다. 이번엔 카메라를 들고 마을 한 바퀴를 돈다. 오를때는 사진 찍기도 귀찮다. 힘들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집어 들자 소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넓은 돌판을 켜켜히 쌓은 지붕이며 굴뚝이며 그리고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여기 쿰부의 세르파는 이미 절반 이상이 전업을 했다. 바로 트래커를 위한 관광업으로 말이다. 숙소를 세우고 식당을 만들고 게 중 모자란 인력은 라이들을 데려다 일을 시킨다. 그리고 비수기가 되면 스텝만 한 명 놔두고 도시로 내려가 술과 춤 그리고 영화를 보며 지낸다고 한다.

그래도 일부는 아직 남아있다. 등짐을 지고 오르막을 오를때는 땀이 배지만 한발자욱 다가서면 쉽게 웃음을 띄운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오늘은 목적지도 없다. 가다 지치면 마을에 자고 가면 된다. 곰파(Tibetan Monastery)가 보이면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가 자시델렉을 하고 합장을 한다. 나이 많은 티벳승려가 혼자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한국사람들은 티벳사람처럼 강하다고 한다. 난 강하지 않고 단지 게을러 천천히 움직여 그렇다고 한다.

게으름은 도시에서 악덕이 되지만 히말라야에선 최고의 미덕이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 숙소를 잡았다. 식당 창문 너머로 동자승과 동네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 일찍 저녁을 먹고 일기를 쓴다. 책을 읽는 것은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것이고 일기는 결국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는 것이다. 책은 무거워 작은 노트를 한 권 가져왔다. 거의 다 채웠다.



과일통조림을 하나 시켰다.
이거 먹고 몇 장 안 남은 물티슈로 발을 씻고 자면 된다.
아! 담배 한 대 피고 자야지.
이제 얼마 안 남은 설산을 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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