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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만두에서 기웃거리기 -Snooping at Kathmandu
박타푸르, 나가르코드


네팔리 마을의 전형적인 풍경

산에선 도시가 그리웠다. 핫 샤워가 그리웠고, 한국음식이 그리웠고, 인터넷을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 거리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 여행자거리 타멜에 몇 일만 있으면 다시 무엇인가를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디로 갈 것인가? 먼저 포카라의 그 넉넉한 분위기가 떠 올랐지만 거기는 왕복 이틀을 꼬박 버스에서 보내야 한다. 여행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 한복판에 들어 온 것이다.
잠시 비행기표를 앞당겨 태국을 먼저 들어갈까 생각해 보지만 그래도 카오산보다는 타멜이 낫겠다 싶어 그만둔다.

근처 힌두마을인 박타푸르를 찾았다.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간혹 이상한 종교적 광기들도 보인다. 그리고 또 이틀 후 우연찮게 한 번을 더 들렸고 다시 타멜로 돌아왔을 때도 그 질문은 계속 된다.

다시 한 번 가 보자!

이번엔 배낭을 메고 가 보자! 거기서 몇 일만 있어보자!
한 번 간 곳은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길가다가 우연히 봄바람에 휘날리는 꽃무늬 원피스를 목도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렇게 내심 생각해 봐도 웬지 불안하다. 가기전에 한국식당 투어를 하면서 책 몇 권을 빌렸고 결국 하루에 한 권씩 읽고 말았다. ^*^

눈에 한 명이 들어온다. 드물게 검은 옷을 입고 사원 처마 밑에서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 몸짓을 보인다.

멀리서 사진 한 장을 당겨 찍고 그의 옆으로 옮겨 쭈그려 앉는다. 대게의 이런경우 결국 그 눈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몇 마디 말을 붙이기 마련인데 그는 나에게 일말의 눈짓도 보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계속 주문 혹은 절을 하는 진지한 그에게 내가 물어볼 수도 없다.

그는 누구인가?

사두인가?

사두는 보통 오렌지색 옷을 입는데 검은색에 뭔가가 있을 듯하다. 결국, 그와는 한마디도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 사진을 보여주면서 스텝에게 물어보자 그가 알은체를 한다.

사두는 아니고 광인이라고 한다. 너무 공부를 많이 해 미쳤다고 한다. 그뿐이냐고 물어보지만 자기가 아는 것은 그게 다라고 한다.

책을 세 권째 읽기 시작할 때 다시 움직일 채비를 한다. 여기서 버스로 두 시간만 더 가면 설산을 볼 수 있는 알파인 급 산골마을이 나온다. 고도를 높이니 그들의 종교가 힌두교에서 다시 티벳불교로 바뀐다. 설산이 보이는 식당에 앉아 나머지 책 한 권을 펼쳐든다. 마침 카투만두에서 대학생들이 시험을 끝내고 뒷풀이겸으로 놀러왔다. 시끄럽게 술에 취해 떠들더니 결국 병이 깨지고 드잡이질이 벌어졌다. 난전이다.

싸움이 끝났을 때 스텝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나는 괜찮다고 한다. 우리도 가끔 저런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혼자 생각하기를 사람사는 곳은 따 똑같군 하고 중얼거린다. 그래도 그렇지. 여기까지 올라 와 싸움박질을 할 것은 뭐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내심 히말라야를 붉게 물드는 일출을 기대했는데 오늘은 힘들 것 같다. 미련없이 다시 타멜로 내려간다.


나가르코트의 버스 정류장

도를 아십니까?

내일 떠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곳을 찾는다. 화장터이다.

마침 시신 한 구가 준비중이다. 머리를 깍은 상주는 뒤로 물러나 있고 친지로 보이는 이들이 마지막 모습을 보며 헌화를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불을 붙인다. 친지들이 물러서자 이번엔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선다. 내심 한 곳에 서 이 과정이 끝날 때 까지 기록을 할 셈이다.

그런데 연기가 내 쪽으로 온다. 눈물이 조금씩 흘러내리는 것 까진 참아본다. 그러다 기침과 콧물까지 범벅이 된다. 바람을 피해 반대쪽으로 가면 머리가 아닌 발이 프레임안에 놓여 우수워질 것 같아 연기를 참아 보지만 이미 눈을 뜨기 조차 힘든 상태이다.

돌아보니 가족들은 손수건으로 입까지 감싸며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뒤로 빠져 나온다.

돌아보니 아주 작은 계단이 하나 보인다. 조심스럽게 올라가보니 이상한 공간으로 이어진다. 비둘기들이, 개들이 어슬렁거리는, 원숭이가 잿밥을 한 움큼 훔쳐 달아나는 묘한 분위기의 마당이다. 그리고 한 쪽에는 몇 명의 사두들이 앉아있다.

몇 발자욱 떨어진 곳에 앉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여행자는 내가 있는 곳이 특별한 곳이기를 바라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 또한 다른 사람이기를 바란다. 다른 풍경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면 나 또한 달라져 보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남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인생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같다는 뜬금없는 생각까지 하게 될 때 그 사두들이 손짓을 하며 부른다.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요, 그러는 당신들은요?-
"우린 인도에서 왔어. 사두야. 너 사두가 뭔지 알어?"

주) 사두는 흰두의 오랜전통에 따라 출가한 순례자로서 우리의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이들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의 그들이 단정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눈동자를 마구 굴리는 것이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면 인도의 사두들은 남루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온화하고 확신에 찬 미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네 알아요! 그럼 여기까지 걸어 왔어요?-
"그래! 우린 가족도 없고 일도 하지 않아. 짜이와 짜파티와 하시시만 있으면 되지"

그렇게 얘기하곤 그들은 이 말에 서로 동의를 구하며 웃는다.

-멋진 여행인데요-
하고 내가 말하자 그는 인도의 지명을 하나씩 댄다. 그 중 가본곳도 있고 처음 들어 본 곳도 있어 그들의 여정이 어떠했는 지 감이 오지 않는다.

"너는 꽤 행복해 보이는 구나"
-그럼요, 행복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얘기가 진행되자 뒤로는 네팔리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두와 동양에서 온 한 남자의 얘기들을 호기심있게 지켜본다. 사두는 그들 중 일부를 불러 이마에 하얀 잿가루를 묻혀 축복을 내려주고 그들 중 일부는 사두들에게 헌금을 한다.

-비지니스 잘 하시네요-
"하하! 비즈니스아냐. 저들이 그냥 내는거지. 너도 돈 있으면 좀 내봐"
-아뇨, 저보다 많이 벌 것 같아 안 낼래요!-
"너 혹시 카메라 있으면 사진 좀 찍어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를 꺼내고 그들 중 일부는 자세를 고쳐 가부좌를 틀기도 한다. 아에 카메라를 넘겨주자 사두가 사두를 찍는 보기드문 모습도 보여준다.

"너는 네가 믿는 신의 이름이 뭐야?"
난 아직까지 종교가 없어요 라고 말한 후 내심 매일 신들의 세계 근처에서 사는 그들의 믿음에 실례가 될 것 같아 한 마디 더 보탠다.

-노 릴리전. 언틸 나우(No Religion. Until now)-

그러자 그는 마치 그 이름에서 신성한 기운을 발견이라도 하고 싶은 듯 <Until Now>를 몇 번 천천히 읊조리더니 <좋은 이름>이라고 칭찬을 한다.

마치 작은 퍼포먼스에서 삐에로가 퇴장을 하듯 나는 이제 가볼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자리를 턴다.

돌아오는 길에 나도 '언틸 나우'를 몇 번 속으로 읊조린다. 그래 좋은 이름이지. 뭔가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바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여지를 남겨두는 여운이 있지 않은가?

이상하게도 이제 네팔에 아니 이번 여행에 아쉬움도 미련도 다 털어버린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