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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가는 길 -Way to down
Tengboche(3860m)-Namche(3440m)-Lukla(2840m)-Kathmandu(1337m)


이제 내려 가는 길이다.

내려올 땐 약간 돌러라도 곁 가지를 쳐 쿰중이라는 곳을 들려보지만 생각보다 별로다. 이젠 미련없이 속도를 붙인다. 남체에서 하루 잔 다음 아침일찍 출발을 한다. 루클라까지 하루에 내려갈 셈이다. 서둘러 내려오니 올라갈 때 5시간 걸리던 길이 내려올 땐 두 시간만에 내려가진다. 잠시 차이 한 잔 마시며 쉴까 하다가 차이대신 창이 날 것 같아 창을 찾는다. 깨끗해 보이는 식당에는 창이 없다.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식당에 들어가 창을 시킨다. 끝 물인지 술 밥을 보자기에 짜 내온다.

발효가 좀 많이 되어 시큼털털한 것이 꼭 이곳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안주로 팝콘 한 접시 시켜 등 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즐긴다.

잠시 후 주인아저씨가 내 앞에 살짝 걸터 앉는다. 우연치 않게도 그는 원정대팀의 세르파였다.

그는 에베레스트정상과 아마다블람을 다녀왔다고 한다. 아마다블람은 낮아 쉽지 않냐고 물으니 그는 낮아도 가파르기 때문에 더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내 손을 잡아 이끌듯이 하면서 다른 방에 가 그동안 받은 확인서를 표구해 넣은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아저씨랑 얘기를 나누다가 찔끔찔끔 마신 창이 벌써 몇 잔째인 줄 모르겠다. 두루뭉실 취기가 올라온다. 결국 난 물어본다.

-아저씨. 빈 방 있어요?-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창 밖은 푸른 어둠이 천천히 밀려오고 있었다. 꼭 하루를 도둑맞은 느낌이다. 혼자 중얼거린다. '그럼 그렇지, 내 성격에 부지런을 떤다고 그게 되냐?'

식당에 들어가자 예상외로 트래커들 한 팀이 들어앉아 있다. 재네들 이 구석까지 어떻게 찾아 왔지? 하고 조금은 이상해 하며 살펴보자 그 구성이 조금 다르다.
스페니쉬 두 명과 콜로비아인 한 명 그리고 일행처럼 보이는 붉은 승복을 입은 티벳스님 두 명이다. 그리고 가이드가 수상쩍다. 퍼머머리를 한 전형적인 스페인여성인데 네팔말과 티벳말까지 한다. 난로가에서 같이 불을 쬐다가 내가 묻는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인데 너 뭐하는지 물어봐도 되니?-
"지금은 티벳절에서 스님한테 티벳말을 배우고 있어. 그리고 가끔 생활비를 벌려고 이렇게 가이드도 하고."

나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띄울려고 '우와! 멋진 인생인데..' 하고 추켜 세우지만 그녀는 조용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더니 신중히 대답한다.
"글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그리고 또 혼자만 알 수 있는 그 작은 미소를 띄운다. 그 미소를 보자 뭔가 더 물어보고 싶은 얘기들을 눌러담는다.

늦게까지 티벳스님 두 명과 얘기를 나눈다. 9살에 출가해 13년간 수련중이니 20대 초반이다. 한 창 복잡할 나이에 얼굴엔 그늘이 전혀 없다. 마치 사회화 과정이 덜 된 사람처럼 장난끼 어린 웃음과 호기심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잠시 노홍철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절 생활은 어때?-
"매일매일 똑 같애. 공부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스님이랑 장난도 치고 그래"
그러면서 그는 마치 쉬는시간인냥 옆에 앉은 스님과 손장난을 친다.
-공부는 어렵지 않아?-
"깨달음 얻는 것은 너무너무 어려워. 우리 곰파의 큰스님 한 명만 얻었어. 우린 공부해. 학생이야"
-가족은 안 보고 싶어?-
이 질문에는 그 장난끼 많은 웃음을 잠시 거두더니 작년 말에는 아빠가 와 몇 일 같이 지냈다고 한다. 3년 만에 만났다고 한다.

주인아저씨 딸내미들이 식당 한 구석에 마련된 침대위로 올라간다. 나도 이제 잠 들 시간이다.

꾸역꾸역 길을 걷는다. 점심에 어느 노가다판에서 창을 한 잔 얻어마시다가 또 주저앉을 것 같아 더 이상은 극구 사양하고 길을 떠난다. 잠시 뒤를 돌아보지만 이제는 설산이 보이지 않는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조금은 무겁다. 아쉬움 인가?

드디어 처음 시작점인 루클라에 도착했다. 보름만이다. 물어물어 가장 오랜된 숙소를 찾는다.(여기가 비행기표 핸들링을 잘 한다는 소문이 있다.) 주인 아들내미와 트래커 한 명이 있다. 그 넓은 식당에 단 세 명이니 합석을 한다. 아들내미는 수입위스키 한 잔씩을 돌린다.

아! 이 잔을 받지 말아야 했다. 결국 자정까지 1리터짜리 수입위스키 한 병과 맥주 몇 병을 세 명이서 비웠고 난 그 중 일부를 새벽에 화장실에 게워내야 했다. 술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역시 공짜술이다.

아들내미는 영어를 꽤 잘한다. 역시 그는 대학을 뉴질랜드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때 한국여자랑 같이 살았다고 한다. 키도 크고 이뻤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말도 몇 마디 한다.

여행을 하기 전에 외국인과 같이 다니는 한국여성을 보면 좀 묘한 감정이 들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감정도 없다. 어차피 모든 한국여자가 내 여자는 아니고(당연하게도 ^*^) 주고 안 주고는 (^*^) 여자 맘 아닌가? 남한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은 개인의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에 대한 개념이다.

다른 트래커한테 묻는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뭐야?-
"아내가 보고 싶어!"
-정말 핫샤워 보다 아내가 보고 싶어?-
이 질문에 아들내미와 나는 맞장구를 치며 웃었지만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아내가 얼마나 이쁘고 훌륭한 사람인지 잔뜩 늘어놓는다.
결국 우리가 졌다.

그는 내가 한국인임을 알자(떠든지 몇 시간 만에 그는 알았다. 이스라엘리인줄 알았데나? 쩝) 그는 들은 얘기 하나를 건네준다.

"어느 한국인 한 명이 글쎄, 가이드도 없이 초라패스를 넘었데, 그런데 도착했을때는 이미 어두워졌고 숙소가 문을 닫았데. 그래서 그 친구는 문짝을 부수고 들어가 또 야크똥 난로에 불을 지폈는데 연기가 안 빠져 가스실이 된 거야..."
허걱! 잠시 나는 그 하국인이 나라고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망설이다가 말하는 쪽을 택하자 그 또한 동공이 갑자기 커지더니 웃어야 할 지 말아야 할지를 망설이는 눈치이다.

그리고 또 세 명이서 술 기운에 떠든 얘기가 영화얘기이다. 저마다 작년 최고의 영화를 꼽다가 <City of God>과 <Galaxi's Hitchhiker>로 좁혀졌고 이때 아들내미는 밖으로 나가 놀랍게도 어디서 빌렸는지 DVD 플레이어와 <City of God>타이틀을 가져온다.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닭들이 뛰어다닌다. 그 도망가는 달들을 아이들이 뒤쫒고 그 뒤로 핸드헬드카메라가 쫒는다. 그 경쾌한 라틴 음악과 말이다.

영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들내미는 식당 한 구석에 눕고 나도 방으로 돌아가지만 결국 다시 나와 화장실로 가 중지를-중지가 다른 손가락보단 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구멍에 쑤셔 넣어 게워내야 했다.

별이 총총히 뜬 새벽이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했다. 7시에 내려가 어제 못 산 비행기표를 부탁하고 양지바른 마당으로 나 와 비행기를 기다린다. 어제는 망설이더니 아들내미도 오늘 내려간다고 한다. 선거일도 겹쳐 어수선하고 무엇보다 아버지 잔소리가 심해 산으로 도망왔다고 한다.

그리고 말이 없다. 하긴 전날 그렇게 서로 떠들어댔으니 모두 들 물끄러미 산에 시선을 둘 뿐이다.

정오가 다 될 무렵 종소리가 들린다. 카투만두에서 비행기가 떴다는 소식이다. 역시 난 운이 좋다. 배낭을 꿰 차고 공항으로 가 수속을 밟는다.

야! 어제 네가 술을 샀으니 내가 가서 점심으로 삼겹살을 쏠께! 카투만두 그의 집에 들려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난 받은 것은 갚는 편이다. 그의 아버지께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어제 당신 아들과 아주 보람차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고급 SUV를 타고 타멜거리로 돌아와 삽겹살을 시킨다. 호기삼아 맥주 한 병을 시켰지만 둘이서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했다.

전에 묵었던 숙소로 돌아와 아주 오랫동안 샤워를 한다.


루크라 공항 너머로 보이는 마지막 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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