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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There is something in Monsoon


페디의 숙소에서 굽어 본 풍경

지금은 우기이다. 그래서 비수기이다.
그러고 보니 난 안나푸르나는 여름인 우기에, 에베레스트는 겨울에 그리고 이번 랑탕은 다시 우기에 왔다. 히말라야의 성수기는 가을과 봄이다. 비가 오지도 않고 날도 그리 춥지 않은 것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성수기에도 단점은 있으니 그것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현지인만큼 트래커도 많으니 좋은 인심을 기대하기 힘들고 또 숙소 잡기도 힘든 편이다.
듣기로는 좋은 숙소를 잡기 위해서 트래커끼리 경쟁을 한다고 한다. 남보다 먼저 일어나 출발을 해 점심 때 쯤 도착해야 괜찮은 숙소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성수기가 아닌 이 때를 고른 이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기 히말라야에는 또 다른 뭔가가 있다. 그것은 거머리다.

전에 안나푸르나에서는 거머리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거머리가 있다해도 3000m를 넘으면 거의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3000m에서 영화에서나 볼 법한 거머리들을 만났다.

빈대와 벼룩도 내 유년기의 추억을 훨씬 벗어난 것이지만 이제 대충 어떻게 대처를 하는 지 안다. 사실 그것을 대처라고 부르기도 뭐 하지만 그 방법이라면 그냥 참는 것이다. 이번에도 벼룩인지, 이인지 아님 빈대인지 모를 것들에게 수 십방의 흔적을 남겼다. 줄일 수는 있다. 아무데나 앉지 말고, 동물은 절대 만지지 않으면 그 수를 확실히 줄일 수는 있지만 나야 비교적 깨끗한 식당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부엌을 더 선호한다. 이것도 비수기의 장점이다. 들어가도 괜찮냐고 물으면 활짝 웃은채로 화덕 옆에 거적을 하나 깔아준다. 아마 거기에 이나 벼룩이 있을 확율이 높다. 하긴 이미 내 몸에도 있으니 더 이상 신경쓰질 않는다. 그 거적 위에 두 다리 쭉 펴고 앉아 화덕의 온기를 느끼며 두런두런 얘기하는 것이 좋다.

거머리는 조금 다르다. 일단 생김새가 마음에 안 든다. 하긴 이 거머리를 마음에 들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지렁이 처럼 생겼는데 움직이는 모습이 다르다. 바닥을 꾸물꾸물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용수철 처럼 운동을 한다. 그러다 온기를 가지고 있는 뭔가를(특히 사람 발) 만나면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이 때 눈치를 채고 잡아야 한다. 이 때를 놓치면 어느새 신발 속에 들어가 피를 빨기 시작한다. 트래킹 중간중간 신발을 벗어 확인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두려운 일 중에 하나이다. 신발을 벗자말자 그 징그러운 몇 놈이 여전히 양말에 붙어 피를 빨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으악>소리를 내며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리고 떼어내기 시작한다. 근처에 돌이나 나뭇가지를 주어 털어내지만 워낙 단단하게 붙어 떼낸다는 표현보다는 있는 힘껏 긁어 내는 표현이 더 맞다.

이곳 헬람부는 길이 애매한 곳이 많다. 근처 마을이라고 불리기 뭐한, 하지만 딱히 마땅히 표현할 것이 없는 산골마을로 작은 샛길이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한 번은 세 갈래길이 나온다. 사람의 흔적인 간신히 나 있는 샛길이다. 어느 쪽을 택할 까 하다가 숲길을 택한다. 숲은 무슨 환타지 영화에 나올 것 같이 음침하고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조금 걷자 엉스가 비명을 지른다. 그녀 발에 어느샌가 수 십마리의 거머리가 붙어 있다. 물론 그녀는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나 보고 어떻게 좀 해 달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그 어떻게를 내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는 <뛰어!>하고 소리치며 뛰기 시작한다. 숲은 더욱 더 음침해 졌고 과연 이것이 길인 지 아닌 지 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바닥을 보자 수천 수만 마리의 거머리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아데르날린의 과다 분비
크게 소리친다. <돌아가!>
그리고 우리는 정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그 숲길을,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좀 전 시속 1킬로미터로 걷다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 나는 지 모르게 휙휙 바람소리에 내며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그 갈림길로 돌아왔다.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 서로 키득대며 한참동안 웃어댔다.

알다시피 인도와 네팔에는 이 카스트제도가 있다. 날 때부터 운명이 지워졌다는 것. 자기가 누구와 결혼할 지 무슨 일을 할 지 정해져 있다는 것. 이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한다. 비판의 근거는 쉽다.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이며 반민주적이며 비인간적이다. 뭔가 안좋은 말들을 대충 붙여도 될 만큼 쉽다.

하지만 하늘 아래 차별 없는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단지 이름만 다를 뿐이지 우리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고 과연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네팔의 카스트는 인도보다 좀 더 흥미롭다. 이곳은 카스트에 따라 지역과 종교 인종까지 바뀌기 때문이다.
네팔에 처음부터 살 던 이들은 네왈리라 하여 지금의 카트만두 분지에 정착을 하며 살았고 인도에서 온 사람들은 고온다습한 남부에 그리고 티벳에서 넘어 온 사람들은 추운 북부 히말라야에 정착을 했다. 인종과 종교 그리고 언어와 문화도 서로 다른 이들 또한 모두 카스트로 분류된다. 이 중 우리에게 가장 관심히 가는 것은 우리와 생김새가 같은 몽골리안 계열이다. 대부분 먼 옛날 티벳에서 넘어온 이들이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세르파이다. 포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들은 처음으로 히말라야가 그들에게 돈을 벌어다 준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에베레스트 솔로쿰부지역의 99% 숙소주인은 모두 세르파이다. 그들은 다른 카스트에게 땅을 팔지 않을 정도로 내부적인 결속이 잘 되며 상대적으로 네팔에서 부유층에 속한다. 랑탕 헬람부지역에 많은 따망이나 구릉, 라마도 히말라야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카스트들이다.


타레파티의 세르파 할아버지

괜찮은 풍광을 가지고 있는 타레파티에는 오직 이 할아버지 한 분 만이 숙소를 지키고 있었다. 약간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는 이 할어버지는 명색이 숙소주인인데도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며 심지어 음식을 만들지도 못한다.
티벳탄빵을 시켰는데 너무 두껍게 만들어 속이 하나도 익지 않았고 팝콘은 하나도 파핑이 되지 않아 구운콘을 만들어 왔다. 그 또한 옥수수가 왜 튀겨지지 않을 까 하는 의심스러운 표정과 말이다.

그럼 그는 뭘 먹는가?
티베탄의 후예답게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창에 참파(곡물을 볶아 만든 미숫가루)를 넣어 2시간에 한 번씩 한잔 씩 마신다. 그러고 보면 그는 항상 살며시 취해 있는 셈이다. 나머지 시간엔 저 악기를 들고 팅가팅가 노래를 부른다. 결국 우리가 밥을 한다. 쌀을 씻어 밥을 앉히고 찌게 비슷한 것을 해 먹거나 한다. 결국 그는 우리에게 설겆이도 시킨다.

둘째날 떠날 채비를 할 때 그가 만류를 한다.
그는 왜 우리를 잡을까?
돈을 더 벌기 위해? 아님, 외로워서?

정답은 심심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꼭 오늘 떠날 이유가 없어 하루 더 주저 앉았지만 결국 심심해 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엉스가 산에서 또 하나의 소일거리를 찾았다. 그것은 난로를 관리하는 것이다.

헛간에서 나무를 훔쳐(사실 달라면 그냥 준다.) 난로를 피운다. 항상 일정한 화력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너무 세거나 너무 약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페디의 세르파 주인 내외

페디의 숙소의 질은 형편없지만 재미있는 주인 내외가 살고 있다. 둘 다 세르파인데 남편은 일반 캐주얼 복장을, 아내는 티벳문양이 들어간 옷 위에 인도의 펀자비를 껴 입은 퓨전스타일이다. 무엇보단 영어도 적당히 하고 스스럼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썰렁한 식당 대신에 우리는 또 그들의 주방겸 침실로 쓰는 공간에 들어간다. 이것이 비수기가 같는 가장 큰 장점이다. 그들은 우리가 들어서자 마자 또 거적 비슷한 것을 내 오며 반색을 한다. 먼저 그들이 내 주는 것은 따뜻하게 데운 창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쌀쌀한 오후에 그 창은 몸과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준다.
또 하나는 야크버터티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티벳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무통에 저 중국 운남성에서 온 반쯤 발효된 차와 뜨거운 물 그리고 야크버터와 히말라야소금을 넣고 뽀작뽀작 소리를 내며 섞어 만든 차이다. 이 차의 역사는 실크로드보다 오래된 것이고 맛 또한 그 역사 만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비리고 찝질하다. 글로벌한 내 식성으로도 한 잔 비우기가 힘들 정도이다. 여기에 참파를 한 줌 넣으면 히말라야 소금에서 얻은 염분과 무기질 야크버터에서 얻은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참파의 탄수화물이 조합된 균형잡힌 영양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티벳의 혹독한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든 그들의 음식이다.


숙소에 놀러 온 따망 손님들
이런 곳에서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사람에 다가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웃음과 함께 담 배 한 대 권하는 것이다.

오후엔 손님이 찾아온다. 지도를 봐도 근처 반나절에는 마을이 없지만 비를 피하기 위해 비닐 한 장 뒤집어 쓰고 손님이 찾아온다. 그러고 보니 이곳 롯지는 산골 사람들에게 작은 시장이다. 뭔가 필요한 것을 받아들고 그들은 그 값으로 보자기 하나를 푼다. 거기에는 변변치 않은 감자 몇 알이 들어있다. 인심 좋은 주인은 사양하며 야크버터티와 창을 한잔 건네준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곳은 시장이자 또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창구이다. 신문도 TV도 없는 이곳에서 그들은 이 근처 마을의 소식들을 전해듣고 또 비닐 한장 뒤집어 쓰고 몇 시간을 걸어 그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가식이나 욕심 같은 군더더기를 뺀 삶의 원형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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