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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인쿤드.-Gosainkund


코사인쿤드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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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지도를 보면 지명이 티베탄, 네팔리(힌디), 영어가 섞여 있다. 티베탄으로 초는 호수, 라는 고개, 리는 산 정도 되고 네팔리로 쿤드는 호수라는 뜻이다. 집도 길도 없었던 때, 이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히말라야 산 골 한 복판에서 이 큰 호수를 보고 신성 비슷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힌두신화는 윤색 첨삭이되어 이곳은 시바가 갈증을 해소한 곳이로 묘사되었다. 결국, 이곳 고사인쿤드(4380m)는 힌두교의 성지로 추앙 받아 매년 여름에는 많은 순례자 들이 모이기도 하는 곳이다.

그리고 오늘은 라우리비나패스를 넘어야 하는 날이다. 에베레스트에는 초라패스 그리고 안나푸르나에는 토롱라패스가 있고 여기 헬람부, 랑탕에는 라우리비나패스가 있다. 해발 4680m로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보다 낮지만 이 패스라는 말이 붙어 있는 곳은 내 기억으로 항상 힘들었다. 긴장을 한다.
여태까지 가다 지치면 쉬어가면 되지 하는 생각이였지만 여기는 다르다.
지도를 꼼꼼히 보고 예상시간을 잡고, 점심과 물도 넉넉히 준비한다.

이곳 라우리비나패스는 15년 전 캐나다 트래커가 실종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두 명의 트래커가 겨울에 이 패스를 넘을려고 했다. 눈발이 날리는 상황에 한 명은 돌아가는 길을 택했고 나머지 한 명은 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결국 한 명은 눈 때문에 길을 잘 못 택했다. 그는 눈을 피할 수 있는 바위 밑으로 몸을 숨겼고 이미 체력이 다해 움직이지 못하고 구조만 기다렸다. 그리고 무려 43일 만에 구조대에 의해 그는 발견되었다. 놀라운 것은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체중의 3/1이 줄고 비타민 부족으로(그는 43일 동안 비상식량으로 초코바 하나만 먹었다고 한다.) 실명이 되었지만 살아 구조되었다고 한다.

그는 겨울잠을 잤던 것인가?


라우리비나 패스 바로 전 방목지에서
야크와 젖소를 교배해 만든 잡종이다. 야크는 히말라야의 험준한 추위와 지형에 그리고 젖소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젖을 만들어낸다. 여름에는 이곳 4500m까지 올라와 방목을 한다. 봄 가을에는 3000m대로 내려가고 겨울에는 2000m의 마을로 내려간다. 이렇게 얻은 우유는 치즈나 버터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이곳 랑탕에는 두 세개의 치즈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 카트만두와 비교해 확실히 맛이 다르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내린다. 제법 굵다. 바람도 분다. 이곳은 거의 능선이라 바람 조차 피할 곳이 없다. 내쳐 걷는데 거짓말 처럼 방목을 하는 소들이 보인다. 허름한 천막도 눈에 들어온다. 넉살 좋게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바닥은 소 똥 천지였지만 이런 곳에서 비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비를 피할려고 소들도 천막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만 주인은 송아지만 빼고 내 친다. 다행히 우리를 내치지는 않는다.

저 소들은 행복할까?
비바람을 맞아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 안에서 사료만 먹는 것 보단 낫지 않을까라는 뜬금 없는 생각에 이른다.

그러고 보니 하나를 묻지 못했다.
과연 그들은 언제 집으로 돌아갈까?
출퇴근한 거리는 못되니 여기서 여름을 날 것이다. 어쩌면 겨울이 되서야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히말라야의 유목민인 셈이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한 지는 그 총 역사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 정착을 택함으로서 인류는 자기가 필요한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 들을 계속 갖기 위해선 다시 떠나기 힘들게 되었다.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이 라우리비나패스(4610m)이다.

생각보다 라우리비나패스는 그리 힘들 지 않다. 가장 가까운 숙소인 페디에서 6시간 정도면 넘을 수 있고 그 반대라면 좀 더 쉽게 넘을 수 있다. 날씨만 좋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넘을 수 있다.
여름이라 푸른 빛깔이 돌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막과도 같은 느낌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엉스한테 말한다.

"네가 먼저 가!"
-왜?-
"너 한테 주는 선물야."

그녀는 앞 서 걷다가 자주 뒤를 돌아본다. 내가 오는지, 보이는 지 확인을 하는 것이다. 이런 길을 앞 서 걷다보면 누구나 자꾸 뒤를 돌아본다. 사막과도 같은 그 황량한 풍경 속에서 난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 지 확인을 하는 셈이다.


히말라야 한 복판에 꽃이 핀다. 이것도 여름 트래킹의 장점 중의 하나이다.


순례자들이 호수에 들어가 수 많은 초르텐(돌탑)을 세워 놓았다.

가는 길에 호수가 몇 개 더 보인다. 황량한 풍경속에 잔잔한 호수는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고사인쿤드 숙소는 생각보다 시설이 좋다. 그리고 여기서 처음으로 트래커를 만나게 된다. 한 명은 프랑스여자이고 또 한명은 네팔리남자이다. 남자가 궁금하다. 가이드라고 하기엔 풍채가 너무 좋고 입성이나 장비도 나보다 더 좋다. 하지만 그는 결국 가이드였다. 한 때 원정대팀의 세르파로도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에베레스트만 몇 번이나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가 산에서 죽자 그 또한 그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사우디에가서 4년 간 일했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아랍어도 할 수 있냐고 묻자 그는 문장 하나를 말한다.

"무슨 뜻이야?"
-No work, no money.-

우리는 4년간 배운말이 결국 그거냐고 웃어댔자만 웃음 끝이 씁쓸해지는 것을 그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지금은 피크 가이드를 한다고 한다. 피크란 히말라야의 5-6000m급 봉우리들을 말한다. 일감은 적지만 그래도 시골에 있는 가족생활비는 된다고 한다. 그는 돌아돌아 결국 제자리로 온 셈이다. 지금 이 프랑스여자와는 2년전 가이드를 했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여자는 이번에 본국에서 직접 연락을 해 일정을 같이 잡았다고 한다. 이들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히말라야를 가장 잘 즐기는 사람들이였다.


고사인쿤드 숙소의 사람들

세르파들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세 명의 자녀 모두 두 명은 외국인 학교에 보낸다. 그 중 한두명은 유학을 갈 것이고 외국에서 정착을 하게 될 것이다. 네팔의 외화수입 1위는 외국인관광객이 그곳에 가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나라에 가 벌어온 돈이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돌라오는 것 보단 거기에 남는 편을 택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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