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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Way to go down


라우레비나 숙소 발코니에서
많은 가이드북들이 이곳을 추천하고 있다. 어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곳에 머물러라. 이것은 명령이다.
숙소의 시설과 주인도 좋고 풍경 또한 다른 곳에 뒤지지 않는다.

내려가는 길은 쉽다.
꼭 중력의 법칙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내리막길은 오르막 보다 쉽다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체력소모는 내리막길이 평지보다 심하다. 내려가는 것이 쉽다는 것은 퇴근길이 출근길 보다 편한 이유와 비슷하다. 하루가 걸리든 일주일이 걸리든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은 것이다.

고사인쿤드 숙소에서는 약간 실수를 한 것 같다. 라우리비나패스를 넘은 것을 자축하기 위해 부엌을 빌려 마지막남은 라면 스프를 이용해 수제비를 띄웠는데 부엌일을 하는 그녀가 우리도 이런 음식이 있다며 직접 나선 것이였다. 옆에서 지켜보니 수제비를 얇게 피는 것이 아니라 완자 처럼 뚝뚝 띄어넣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가 직접 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을 살짝 건드린 것 같다. 체크아웃을 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며 작은 지폐 한 장을 건넸다. 그녀는 오히려 자기가 미안하다며 우리가 앞으로 갈 곳의 숙소를 챙겨준다. 여기는 삼춘집이고 여기는 친구네가 하는 곳이라며 명함을 건네준다.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숙소도 좋으며 누구 소개로 왔다니깐 대우도 틀려진다. 아시아에선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틀려진다.

우리야 뭐 하나 살 때도 인터넷으로 정보를 살피고 사용기도 읽어 비교를 하지만 그네들은 알음알음으로 소개를 받는다. 여하튼 초면인 우리가 어느새 아는 사람이 된 것이고 그 만큼 편안해진다.
장작도 넉넉히 챙겨주고 마지막 떠날 때에는 차 한잔 더 하고 가라며 붙잡는 것도 아는 사람에게만 하는 친절일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음식이 좋다. 지금은 주방장을 휴가 보냈지만 성수기에는 크로아상과 케익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이 어깨너머로 배운 피자와 스파게티 또한 산에서 먹은 음식 중에서 가장 훌륭했다. 또 구면인 것처럼 두런두런 나누는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산은 어땠어? 좋았어?"

-네, 비만 빼고 다 좋았어요. 설산도 못 보고 은하수도 못 본게 좀 아쉽지만 할 수 없지요. 아내는 여태까지 은하수를 한 번도 못 봤데요.-

"지금은 비가 오는 시즌이지."

나는 내심 이번주에 비가 이렇게 많이, 그리고 자주 온것에 대해 특별한 지적 같은 것을 기대 하거나 혹은, 우기때 트래킹이 힘들다는 식의 위로를 기대했지만 그는 우기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밤이 되자 그는 우리가 있는 일층으로 뛰어내려오더니 소리친다.

"나가봐. 밖에 별이 엄청 떴어."

서둘러 나가보니 솜사탕처럼 은하수가 총총히 박혀있다. 엉스가 말한다.

-저게 다 별야?-

"응, 저 정도면 은하수라고 불리지."

-꼭 천문대에 온 것 같애.-

"너 천문대에 가 봤어?"

-아니.-

"히말라야가 너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인가 보다."

그녀는 내 말에 잠깐 흘기더니 다시 고개를 꺽어 하늘만 본다.


남의 나라 구름은 생김새도 다르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하늘을 볼 기회가 몇 번이나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려가는 길에는 속도를 붙인다. 속도를 붙여봤자 남들 하루코스를 하루에 간다는 의미이다. 그냥 중간에 낮잠이나 낮술을 하거나 점심 때 중간 쯤에서 체크인을 하거나 뭐 그런 짓을 안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오늘은 괜찮나 싶더니 또 비가 내린다. 어느새 길은 진흙탕이 되 버리고 양말까지 다 젖었다. 이 주간의 산행중에 비가오지 않은 날은 딱 하루였다. 반대쪽에서 넘어 온 트래커는 일주일 동안 비는 딱 하루 왔다고 하는데, 이번엔 운이 안 따라주는 것 같다. 드디어 해 질 무렵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마을이다. 우체국도 있고 학교도 있는 제대로 된 마을이다. 전기도 들어오고, 이 주만에 처음으로 아스팔트도 보이고(그래야 한 100m 정도?) 전봇대도 보이고 버스도 있다. 핫 샤워도 가능하다. 물론 날씨가 좋을 때만 가능하다. 첫 눈에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계획을 바꿔 몇 일 머물기로 한다.


둔체(2030m)의 풍경
저 반듯한 아스팔트와 촘촘히 얽힌 전기줄을 봐라. 반갑지 않은가?

아침 저녘으로는 카메라 하나 들고 산책을 한다. 언덕에는 산골마을의 전형적인 분위기이다. 담장도 없어 기웃이웃 거려보다가 내친 김에 집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어느새 아이들 수 십명이 내 뒤에 붙어 있다. 생김새도 비슷한데 그들은 어떻게 외지인을 한 눈에 알아보고 따라오는 지 나도 모르겠다. 다행히 원 달라를 외치지는 않는다. 그냥 그들도 심심하던 차에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아 우리 뒤를 쫒는 셈이다.
낮에는 소일거리를 한다. 거리 이발사에게 머리를 깍고 산에서 쓴 엽서를 부친다. 이런 간단한 일이 제법 시간이 걸린다. 우체국에선 고액우표(그래야 500원)가 떨어졌다고 한 참을 부산을 떨며, 그 와중에 고위공무원인 우체국장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오래된 내 침낭의 수선을 맡기면 옆 집에선 차 한잔 하자고 잡아끌면 차가 아닌 럭시(창을 증류시킨 소주)를 내 온다.

럭시를 만드는 과정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창을 끓여(증류) 소주와 비슷한 럭시를 만든다. 도수는 40도 정도로 우리의 안동소주와 비슷하다. 사실 안동소주는 비싸 나도 먹어보질 못해 그 맛을 비교하지는 못하겠다.

독한 것을 싫어 하는 사람이면 여기에 따뜻한 물과 꿀을 한 스푼 넣으면 사께와도 같은 맛이 나기도 한다.

반면 요즘 카트만두에선 공장에서 화학약품으로 만든다고 하여 현지인들도 안 마시니 주의해야 한다. 일례로 인도에선 메틸알콜로 만들어 수 백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얘기도 있다.

 

 

꼭 히말라야 트래킹이 아니더라도 이런 곳은 마음도 푸근해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산을 싫어한다면 이런 곳을 여행해도 좋을 듯 하다. 이곳에서 북쪽은 따망마을로 알려져 있으며 괜찮은 지도에는 미니 트래킹코스도 있다. 3000m대이고 마을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육체적으로 무리는 없다. 그리고 그 위쪽에 바로 티벳 국경이 붙어있다. 현지인들은 신분증만 보여주면 건너갈 수 있다고 한다. 이곳 인심에 비춰보면 국경에서 말만 잘하면 당일치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도 해 본다.

이제 카트만두로 돌아갈 시간이다. 직선거리로 100km인데 버스로 10시간이 걸린다. 누구는 하드코어 롤러코스트길이라고 하기도 한다. 게다가 산사태로 길이 끊어져 일부는 걸어가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타 보니 길은 생각보다 과장되었다. 물론 발 밑으로 아슬아슬한 절벽이 펼쳐지지만 엉스는 그 와중에 잠도 잔다. 히말라야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시간도 없고 산도 오르기 싫어하는 사람은 100불이 좀 넘는 마운틴플라이트를 이용한다. 20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동안 히말라야를 빙 둘러 오는 일정이다. 반면에 돈도 없고 산도 올라가길 싫은 사람은 이곳 둔체로 오라. 3-4000원 요금에 10시간 짜리 산길을 달리며 그 종착지는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둔체 혹은 샤브로베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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