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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포카라.-Freedom for nothing to do. Pokhara


사랑곳에서 본 포카라 전경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문구를 기억할 것이다. IMF가 서서히 끝나 갈 때, 모든 사람들의 가치가 돈, 부자, 재테크 등으로 급격히 전도 될 때 어느 카드회사가 그 은밀한 욕구인 떠남을 대대적으로 부축인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조건이 달려있었다. 즉, 열심히 일한 사람만 떠나라라는 것이다.
떠남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며 권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떠남 혹은 도망이라는 매혹적인 일탈의 충동이 오직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만 한정시킨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나 처럼 인생을 띄엄띄엄 사는 사람에게도 그 욕구는 있으며 그 열심히 일한 남들보다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 있다.
이집트의 다함, 인도의 고아, 네팔의 포카라 정도가 그곳인데 그 공통점은 히피들에 의해 개발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히피들이 삽을 들고 숙소를 짓고 카페를 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네들이야 나보다 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임에 분명하지 않은가. 천천히 소문에 소문을 거듭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한번은 포카라에서 꽤 오랫동안 장사를 했던 사람을 만나 물어본다.

"옛날 포카라는 어땠나요?. 히피들 얘기 좀 해 주세요."
-아! 하피?
내가 너 만했을 때인가? 1970년도 정도 됐지. 그 때는 많이 틀렸어. 게스트 하우스라고 해 봐야 한 두개 정도 됐나. 흙집이였지. 아마 숙박비는 한 3루피 정도 했지.-
"정말요?"
-그럼, 그리고 하시시를 길에서 팔았지. 지금 저 기념품 가게들처럼 길에다 놓고 팔기 시작했지.지금이야 불법이지만 말야.-
"근데 그들은 다 어디 갔나요?"
-그 하시시가 조금 문제를 일으켰지. 아무것도 안하고 하시시만 피는 히피들이 너무 많이 생겨났거든. 그래서 왕이 그들을 내쫒기 시작했어. 1980년대인가, 사실 다른 방법도 있었는데 왕은 비자를 만들어 비자기간이 만료된 이들을 하나 둘씩 쫒아낸 거지.-

히피들이 만 든 곳. 포카라. 지금 히피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포카라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을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포카라에는 그닥 가 볼 만한 곳이 없다. 호수라고 해 봐야 우리나라 신도시의 호수와 별 반 다르지 않고 원데이 코스로 소개된 동굴이나 폭포도 사실 기대하고 가면 실망이 클 뿐이다. 그리고 가이드북에 소개된 이런 모든 것들을 하는데 이삼일이면 족하다. 그리고 그렇게 다 봤다고 이 삼일 만에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머지, 그 이삼일만에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언제 떠날 지 모르는 사람들이 된다. 일주일을 머물 지 한 달을 머물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자기가 언제 떠날 지 모르게 되는 것. 그것이 포카라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여행은 다름아닌 움직이는 것이다. 그 여행의 무게마저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포카라이다.

베거본드 게스트하우스에는 투덜이 스머프가 살고 있다.


4-5000원에 이와 같은 방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여행자에게 분명 축복이다.

포카라 게스트하우스, 레이크 게스트하우스 같은 촌스러운 이름을 단 숙소들이 넘쳐 나는 거리에 이와 같이 고급영어인(?) Vegabond(현지인은 빠가본드라고 발음한다.)라고 이름 붙인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3년 전에 이곳에 묵은 나는 이번에도 물어물어 찾아간다. 골목 안 쪽에 있어 찾기가 조금 힘든, 그리고 웬지 모르게 그 근처에 사는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혹은 알아도 잘 안 가르쳐 주는 숙소이다.
주인이 외국인이라는 소문부터 외국여행자와 눈이 맞어 이민을 갔다는 얘기, 이웃들과 관계가 소원하다는 얘기까지 뭔가 확실한 것은 없다.

3년 전에 이곳에 묵었던 나를 스텝은 용케 기억한다. 그렇다고 나와 스텝에 뭔가 기억할 만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 만큼 손님이 없었다는 말일 것이다. 어쩌면 붙임성 없는 그와 뭔가 기억될 만한 일을 만드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심심한 내가 먼저 몇 번 말을 걸어보아도 그는 늘 퉁명 스러운 대답 뿐이다. 결국 우리는 그를 투덜이 스머프라고 부른다.

방을 나설 때 마다 로비에 있는 그에게 살갑게 말을 붙여본다.

"뭐해?"
-그냥 앉아 있어.-

TV도 켜져 있고 손엔 신문이나 책도 들고 있지만 항상 그의 대답은 똑 같다. 나는 배는 어디서 타야 싸냐? 자전거는 하루 빌리는데 얼마냐? 등등 자질구레한 것 들을 몇 가지 물어보지만 그의 대답은 항상 모른다는 얘기 뿐이다. 심지어 그는 마음에 안 드는 여행자가 들어오면 방이 없다는 거짓말도 한다. 물론 방이 철철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물론 우리에게 악의는 없다. 청소를 해달라거나 시트를 갈아달라고 하면 군말없이 갈아준다. 또 자정이 넘게 들어와 자는 그를 깨워도 그냥 '노 프라블럼' 한 마디 뿐이다.
낮의 대부분의 시간은 그는 그의 표현대로 쇼파에 그냥 앉아 있을 뿐이다. 얼핏 보기에도 엄청 지루해보이지만 그는 그 시간을 용케 참아낸다. 아니 몸에 잘 맞는 옷 처럼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간혹 그는 단 맛 쓴 맛 다 본 인생의 선배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가 웃으면서 나에게 먼저 말을 붙인다.

-그거 빨래야? 내가 해 줄께.-

돈도 여자도 도통 관심이 없는 그가 의외라 생각하여 그 이유를 물어본다. 그는 멀리서 동생이 왔다고 한다.
그렇다. 간만에 누군가 찾아 왔으니 호수에 가서 배도 한 번 타야 하고 피자라도 한 판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빨래는 훌륭했다. 하지만 결국 그 동생이 돌아가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그냥 앉아 있을 뿐이였다.

결국 그의 미소를 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


처음 몇 일 동안은 심심했다. 그렇다고 바로 다른 도시로 갈 이유도 없었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은 우기이지만 다행히 한국인들은 제법 되었다. 나는 밖이 보이는 식당에 앉아-문이나 창문도 없지만 그렇다고 길거리도 아닌-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한다. 두 세 시간만 앉아 있으면 같은 사람이 몇 번씩 보인다. 그들도 우리처럼 뜨악히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말을 건넨다.

"바쁘지 않으면 놀다 가지 않을래요?"
혹은,
"심심하면 고스톱이라도 치실래요?"

물론 이와 같이 엉뚱한 뻐꾸기를 날린 것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다. 그런 우리를 위 아래로 쳐다보더니 인사 한 마디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여기는 포카라 아닌가? 결국 네 명을 꼬셨다. 인도에서 건너온 한 커플과(우리는 그를 탁구클럽 커플이라고 부른다. 그는 김해탁구클럽이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티벳에서 내려온 5불 여행자이다. 그런 그들과 일 주일 동안 무엇을 했냐 하면 고스톱과 포카이다. 다행히 장비는 그들이 가지고 있었다. -탁구클럽이 고스톱을 5불생활자가 카드를 가지고 다닌다. - 주로 방이 가장 넓은 우리방에 치기 시작햇지만 나중엔 분위기를 바꾸러 옮기기도 한다. 5불 생활자 답게 그는 부엌이 있는 숙소를 잡았다. 추렴하여 닭 한마리 쌀과 김치를 사서(한국식당 비스므리한 곳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다.) 닭죽을 앉히고 발코니에 의자와 테이블을 끌고 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포카를 친다. 또 한번은 카페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처음에는 조금 눈치가 보였지만 어차피 손님도 우리외엔 없고 끼니 때 마다 커피를 시키니 오히려 주인이 좋아하는 눈치이다. 돈은 주로 엉스가 딴다. 그리고 오불 생활자가 가장 많이 잃는다. 심지어 하루에 5불을 잃는 날도 있다.

희안하다. 그녀는 나와 맞고를 치면 항상 잃는데 포카라에선 어느새 그녀의 판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때 그녀의 눈에서는 묘한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 열정은 트래킹도, 래프팅도, 홍콩의 화려한 쇼핑가에서도 못 본 것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딴 돈으로 생색을 내며 술을 산다.

주종은 창이다. 이곳 레이크사이드에는 창이 없어 티베탄들이 주로 사는 댐 사이드까지 가야 한다. 통이 없으니 반말들이 통을 하나 샀다. 하지만 반말들이 통은 턱 없이 부족해 술자리 중간 중간 가위바위보를 해 진 사람이 또 들통을 들고 다녀와야 한다. 여기서 댐사이드까지는 제법 먼 거리이다. 인적 없는 신작로길을 한 참을 가야한다. 돌아오면 어느새 그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을 한다. 물론 나보다는 들통이 더 반가웠지만 말이다.

술자리가 파할 때 인사는 내일 일어나면 다시 모이자는 얘기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갔다.

돌아와 엉스에게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물으면 그녀는 그녀가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프라하도 홍콩도 히말라야도 아닌 포카라를 얘기한다. 거기서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반디푸르 근처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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